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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m 높이 배 댈 부두 앞에 60m 다리 세우는 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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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6일 부산 북항재개발 구역에 건설 중인 크루즈 터미널 부두 뒤쪽으로 북항대교가 보인다. 북항대교 높이제한(60m)에 걸려 초대형 크루즈선은 들어올 수 없다. [송봉근 기자]

16일 오전 부산 초량동 북항 국제크루즈터미널 공사장. 모래·흙 같은 골재를 실은 트럭이 연신 오가는 가운데 중장비들은 바닥 고르는 작업을 하면서 굉음을 뿜었다. 13만t 이상 초대형 크루즈선을 댈 수 있는 부두 공사 현장이다. 영도에 크루즈터미널이 있지만 13만t 이상 초대형은 댈 수 없어 새로 짓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착공해 2015년 2월 준공 예정이다. 사업비는 총 3068억원.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가 2538억원을 들이고 국비 530억원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 터미널에는 초대형 크루즈선이 들어올 수 없다. 배가 들어오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북항대교에 걸려서다. 북항대교는 허용 통과 높이가 60m인데 초대형 크루즈선은 수면 위 높이가 이보다 높다. 지난 8월 서울에 한국지사를 낸 크루즈선사 카니발 코퍼레이션의 ‘퀸 메리 2호(Queen Mary 2·14만8528t)는 수면 위 높이가 72m이고, 싱가로프 등 아시아 항로에 취항 중인 로얄캐리비안 크루즈의 ‘보이지 오브 더 시즈(Voyage of The Seas·13만7276t)는 63.5m다. 60m보다 낮은 초대형 크루즈선도 있지만 대부분 구형이어서 언제 퇴역할지 모른다. 부산시 등은 3000억원 넘는 돈을 들여 ‘오지 못하는 배를 맞이하기 위한’ 부두를 짓고 있는 셈이다.

 북항대교도 문제가 있다. 이 다리는 북항 크루즈터미널에 앞서 2007년 4월 착공해 내년 4월 완공 예정이다. 착공 당시 크루즈터미널 계획이 잡혀 있었고, 크루즈선은 점점 높아져 60m를 넘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북항대교는 설계 변경 없이 ‘통과 허용 높이 60m’ 그대로 추진됐다. 세계적인 크루즈선 크기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북항 크루즈터미널이 제구실을 못 하게 됐다.

 이처럼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이 어이없이 세금을 버리다시피 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2009년 인천시가 개최한 ‘인천세계도시축전’도 그렇다. 미래의 도시 모습을 펼쳐 보이는 전시회였다. 애초 인천시는 엑스포급 초대형 행사를 기획했다. 이름을 ‘세계도시엑스포’로 정하고 행사장 설계를 했다. 그러나 정작 국제박람회기구(BEI)는 “엑스포란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통보했다. 2010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엑스포가 열리는 판에 인근에서 열리는 비슷한 행사에 같은 명칭을 쓰도록 허락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인천시는 행사를 축소하고 설계부터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들였던 설계·홍보비 122억원은 날렸다. 국제기구 승인을 받기 전에 무작정 사업을 추진하다 예산을 낭비한 것이다.

 전남도는 배 건조와 전용부두 건설 등에 총 67억원을 들여 만든 거북선형 유람선을 놀리다시피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를 오가는 유람선이다. 174명이 탈 수 있는 배를 2008년 운항하기 시작했다. 하루 네 차례 운항에도 평균 이용객은 50명을 밑돌았다. 쌓이는 적자를 견디다 못해 지난 3월 운항을 중단했다가 올 9월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승객이 없어 9, 10월 두 달 동안 단 6번만 운항했다.

 제주도는 2011년 말 163억원이 적힌 국제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았다. 당시 스위스 민간단체 ‘뉴 세븐 원더스(New Seven Wonders)’ 재단이 진행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기 위해 1억 통 넘게 국제전화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은 됐다. 그러나 효과는 미지수다. 투표를 한 2011년 104만5000여 명이었던 외국인 관광객은 올 들어 12월 15일까지 227만1000여 명으로 122만6000여 명 증가했다. 하지만 선정 효과라기보다 한류 붐을 타고 중국인 관광객이 봇물을 이룬 덕이 크다. 같은 기간 제주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20만4000여 명 늘었다. 제주도는 투표로 물게 된 전화요금 중 111억원만 냈고, 52억원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체된 상태다.

 인제대 강재규(53·법학과) 교수는 “지자체장의 치적 과시 내지 선심 사업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으려면 주민들의 감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법률 위반과 고의적인 과실에 머무르고 있는 주민소환 대상에 예산 낭비를 포함시키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주민소환제란 자치단체장이 지방의원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주민투표를 통해 퇴출시키는 제도다.

◆특별취재팀=이찬호·전익진·홍권삼·황선윤·신진호·최경호·김윤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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