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 쉼없는 체질개선 … 호주 경제 22년째 캥거루 질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 12일 호주 동부의 항구 도시 글래드스톤 인근 커티스 섬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20.7㎢ 부지에는 두 개의 거대한 LNG 저장시설과 천연가스 냉각 설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가스공사와 호주 산토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프랑스 토탈 등 4개 업체가 참여해 18억5000만 달러(약 1조9500억원)를 들여 연 780만t의 LNG를 수출할 수 있는 설비를 만드는 GLNG 사업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1년 공사가 시작됐으며 2015년 상반기부터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북서쪽으로 440㎞ 떨어진 수랏 분지의 석탄층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 가스 파이프라인으로 커티스 섬에 이송한 뒤 냉각 압축해 액화 상태로 만들어 LNG 선박에 실린다. 농구공 부피의 천연가스가 냉각 과정을 거치면 탁구공만 한 LNG가 된다.

 인근 부지에는 똑같은 처리 용량을 가진 두 개의 LNG 설비가 영국·중국 등의 자본으로 지어지고 있다. 공사가 끝나면 이 지역에서 모두 2000여 명의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 GLNG의 글래드스톤 지역 책임자 개리 스캔랜은 “한국가스공사는 앞으로 25년 동안 GLNG에서 매년 350만t의 LNG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며 “한국가스공사는 정정이 불안한 중동의 LNG 수입에 문제가 생겨도 호주에서 안정적으로 LNG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천연자원 붐 등에 힘입어 호주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호주는 1991년 이후 올해까지 22년 연속 성장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중 20년 이상 성장한 곳은 호주가 유일하다. 이 기간 중 연평균 성장률도 3.5%로 선진 경제 중 가장 높았다. 호주는 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 세계 닷컴기업 버블 붕괴,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촉발한 세계 경제 부진 등을 이겨내고 견고하게 성장하고 있다.

 호주의 경제 전문가들은 호주 경제가 지속 성장한 데는 자원 붐이 기여했다고 인정한다. 호주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로위(Lowy) 인스티튜트의 국제경제 담당인 마크 설웰은 “호주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한 데는 중국·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의 자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는 것이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20년 이상의 경제 성장을 단순한 자원 붐으로만 설명할 순 없으며 호주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시장 진입 장벽 철폐, 공기업 민영화 등의 개혁 조치가 기반이 됐다”고 지적했다.

 호주 경제는 80년대만 해도 부진한 성장률에 시달렸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80년 “아시아의 가련한 백인 쓰레기(poor white trash)”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런 호주가 국제사회의 모범생이 된 데는 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한 개혁 조치가 밑거름이 됐다고 호주 최대 통신회사인 텔스트라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소디는 말했다.

 호주는 83년 호주 달러화 가치를 시장에서 자율 결정되도록 한 외환시장 자율화 이후 개혁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90년대 도입된 국가경제 정책에 따라 관세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공기업을 대거 민영화했다. 호주 최대 항공사인 콴타스가 95년 민영화됐고, 텔스트라도 98년 민영화를 시작해 2006년 완전 민영화됐다. 전력회사와 가스회사도 민영화 대열에 합류했다. 시장 개방에도 적극 나서 최근 한국과 사실상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것을 비롯해 미국·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말레이시아·태국·칠레 등과 FTA를 맺었다. 이런 개혁에 힘입어 호주는 효율이 높고 위기 적응력이 높은 경제 체제를 갖게 됐다고 설웰은 설명했다.

 호주 125대 대기업 모임인 호주기업인협회(BCA,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의 CEO 제니퍼 웨스타콧은 “호주 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금융·교육 등 서비스 부문이 호주 경쟁력 상승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며 “호주는 숙련된 인적 자원과 지속적인 시장 개방 , 정부의 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향후 20년 동안에도 지속 성장할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캔버라·시드니·글래드스톤=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