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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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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진산 "고향서 마지막 심판">
공천자 명단이 발표된 11일의 신민당 중앙 당사는 아침부터 낙천 자들의 파상적 항의 난동으로 온종일 수라장이 되었다.
문짝이 부서지고 전화통이 박살나는가 하면「캐비닛」이 엎어지고 거울과 유리창이「쟁그렁」.
상오 10시 진산계 청년 당원들의 분풀이로부터 소란은 시작됐다. 금산-대덕-연기에 공천신청을 낸 청년국장 김제만씨(진산 계)가 낙천 되고 유진산씨의 비서실장인 신동준씨가 대전에 공천을 못 받았다(발표는 보류됐지만)는 이유를 들어 청년 국 소속 당원들이 몰려든 것이다.
「아이러닉」하게도 진산의 전국구 등록으로 반 진산 계가 2년 전 소란을 피우던 그 자리에서 진산 계가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진산 계의 소란은 유씨의 금산 출마를 항의하는 소동을 미리 막기 위한 바람잡이였다는 얘기도 있다.
김씨를 따르는 청년의원들은 10일 하오 상도동으로 유진산씨를 찾아가 2시간의 담판을 벌이며 불출마를 권유하고 금산 지구에 김씨를 공천할 것을 요구했으나 유씨는『내 생애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심판을 받아 보기로 결심했다』면서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더라는 것.
김씨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금산 선거구에 내려가 유진산씨 선거운동을 도와줄 결심이라고 했는데『후보등록 기탁금 2백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2백만원 짜리 땅을 공연히 80만원에 팔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제2파는 제주(낙천자=강진성씨), 3파는 달성-고령-경산(낙천자=이형우씨)지구당원들. 그리고 제4파는 진주-진양-예천의 박형식씨가 영등포1구의 김유근씨와 함께 고함을 치며 책상을 엎고 전화기를 내동댕이쳤다.
이 통에 상오 11시 중앙 당사에 나와 명단을 발표하겠다던 편용호 대변인이 당사 주변엔 나오지 못하고 하오 1시쯤 중앙 당사 근처 H일보 사옥 13층「라운지」에서 4개 방송국에 전화로 공천 결과를 알리고는 이철승 공천 심사위원장의 비서를 시켜 당사 현관 벽에 명단을 써 붙이게 했다.

<낙천 되자 통일당에 교섭>
명단이 발표되자 공천을 받은 사람들은 득의의 표정으로 3층 조직 국에 올라가 유진산 당수명의로 공천을 받아 갔지만 낙천 자들은 속속 탈당 계를 내고 무소속 출마 또는 민주통일당 공천교섭을 벌이기에 바빴다.
서대문구에서 편용호 대변인과 경합했다가 낙천된 정무위원 김용성씨(8대의원)는 가장 친한 사이인 이상신씨로 하여금 탈당 계를 접수시켰고.
대구 중-서-북구에서 복수 공천이면 마음놓을 수 있다고 했던 한병송씨가 3회 낙선의 전국구 의원에게 두 번째 자리마저 밀린 것을 보곤『꼭 1년10개월만에 신민당을 떠나는 군』하면서 탈당 계를 써냈다.
탈당 계를 낸 사람은 8대의원 7명을 포함해서 20여명, 그중 이형우씨(달성-고령-경산)는 탈당 계를 낸 후 즉시 통일당으로 양일동 대표 최고 위원을 찾아가 공천교섭을 벌였고 한병송씨는 양일동씨와 전화연락을 했다.
김용성씨와 홍창섭(춘천-춘성-철원-화천=양구), 이용희(옥천-보은-영동)씨 등은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거취를 밝혔는데 홍씨는『신민당에 본때를 보여주어야겠다』고 별렀다.
의정부-양주-파주의 정인원씨는『어젯밤만 해도 공천자는 나로 결정됐던 것인데 하룻밤 사이에 뒤바뀌었다』면서 탈당 계를 냈다.
진산 직계로 자타가 공인하는 8대의원 정규헌씨는 무주-진안-장수에 공천 신청을 내놓고 공천은 별로 걱정도 않은 듯 11일 아침까지도 중앙 당사에 나와 자신의 선거공보와 벽보 원고를 만졌는데 낙천 소식을 듣고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한동안 말을 잊었다.

<재떨이 깨지는 등 소란도>
비밀리에 진행된 신민당 공천작업은 서울 시내 통의동 소재 이철승 심사위원장 친구 집에서 이루어졌다.
당초 지방에 내려가 심사 작업을 벌인다는 말을 퍼뜨려 놓고는 엉뚱하게 서울 시내의 사저를 택한 것은 이씨의「아이디어」.
9일 하오 5시쯤에 잠적한 공천 심사위원 10인은 따로따로 이 위원장과 접선해서 예약된 장소로 모였는데 첫날인 9일 밤엔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만 잠을 자고 10일 밤엔 거의 밤을 새우며 입씨름을 벌였다.
때로는 고함이 오가고 재떨이와 유리그릇이 깨지는 등 험악한 장면이 자주 벌어지면서 한 지구 한 지구 이해관계가 얽힌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어느 지구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 투표로 먼저 단수·복수 공천 여부를 결정하고 다시 공천 자를 표결했다.
심사내용은 정일형 당수 권한대행과 유진산씨에게만 간간이 보고되었고 발표를 위해서 이 위원장은 편대변인을 제3의 장소로 불러내 명단을 수교했다.
편대변인이 이 위원장의 전화를 받고 N「호텔」「코피·숍」에서 이철승 위원장과 신도환 사무총장을 만나 명단을 수교 받은 것은 11일 상오 11시40분.
그 길로 세 사람은 남산교회로 달려가 일요일 예배를 보고 있던 정일형 당수 대행을 교회 옆집으로 불러내 공천 심사결과를 결재 받았다.
정 대행은 이 자리에서 몇 개 지구의 공천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특히 유진산씨를 영등포1구가 아닌 금산-대덕-연기로 공천한데 대해 몹시 못마땅해하며 유씨 공천은 발표를 보류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그러나 공천은 공천심사 위 전결 사항이기 때문에 정 대행의「엄명」은 엄명이 될 수 없었다.
이틀간의 철야 공천작업을 마친 공천 심사위원들은 이 시간에 벌써 뿔뿔이 헤어져 목욕탕이나 이발소에 있었다.

<"공천하면 탈당 불사" 홍씨>
공천 심사위원들은 자신이 미는 사람들을 공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대구 중-서-북구의 경우 이민우씨는 이대우씨를 밀었고 신도환씨는 한병송씨를 주장했다.
이민우씨는『이대우씨를 공천 안 하면 나는 다른 지역의 공천심사에 응할 수 없다』고 고집을 세워 결국 이씨 안대로 낙착됐다는 얘기고 옥천-보은-영동의 경우 이철승씨가 최극, 정해영씨가 김선우, 그리고 신도환씨가 이용희씨를 각각 밀었는데 정씨가 김선우씨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김씨로 낙착된 반면 이철승 계인 최 극씨는 충주-중원-제천-담양 구로 전지 공천되었다는 뒷 얘기다.
부산 동구는 한때 정무회의 의장단의 단일 공천 얘기가 나와 김영삼씨와 함께 공천신청을 한 김승직씨는 몹시 초조해 홍익표씨를 시켜 단일공천이 되지 않도록 부탁하게 하기도 했는데 종로구가 복수로 되면서 아주 이의 없이 복수 공천이 됐다고.
공천 심사 위는 연천-포천-가평-양평 구에 홍익표씨를 일방적으로 공천하려고도 했으나 홍씨가『나를 공천하면 즉각 신민당을 탈당하겠다』는 완강한 사양을 비서를 통해 전달해 와 결국 천명기씨를 공천.
포항-영일-영천-울릉에서 복수 공천을 받은 조규창씨는 이철승씨가 우선 순위 1번으로 추천한 사람이며 역시 이철승씨 계로 알려진 오세응씨도 복수 공천에 끼여 이 위원장의 입김을 증명해 주고 있다.
김영삼씨가 추천한「케이스」로는 산청-함양-거창의 김동영씨, 의정부-양주-파주의 김형광씨 등이 꼽힌다.
목포-무안-신안에 공천신청을 낸 김윤덕씨를 연고가 적은 나주-광산지역으로 전지 공천한 것과 공주-논산에 박찬, 고창-부안에 김상흠씨 둥을 공천한 것은 유진산씨의 영향력을 말해 주는「케이스」.
이러한 공천 내막과 아울러 야당가 일부에서는 자금수수설이 나돌고도 있어 공천 후유증은 얼마동안 계속될 것 같고.

<8대의원 51명…가장 많아>
신민당의 공천자를 분류하면 8대의원이 51명으로 가장 많고 이밖에 전 의원 11명, 지구당 간부 19명, 그리고 당 외 사람이 6명이다. 신민당은 대도시 지역만을 예외로 하고 단수공천을 원칙으로 했다. 이런 원칙대로 서울의 8개구 중 서대문을 제외한 7개구, 부산 4개구 중 2개구, 대구시 2개구 중 1개구로 대도시 10개 구를 복수 공천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지방의 ▲여주-광주-이천 ▲포항-영일-영천-울릉 ▲안동시-안동-의성 ▲달성-고령-경산 4개 구를 복수 공천했다.
전지 공천은 최 극(영동구에서 충주 구로), 김윤덕(목포 구에서 나주 구로) 두 사람.
당 외서 들어온 사람은 6명인데 김명윤(변호사·강릉-명주-삼척), 고재청(담양-화순-곡성), 조규창(재미교포·포항-영일-영천-울릉), 김선우(전 의원·보은-옥천-영동), 박병효(전서장·여수-여천--광양)씨 등은 그 동안 신민당과 별다른 관계가 없었던 사람들.
특히 속초-인제-고성-담양에서 공천을 받은 김종호씨는 7대 때 공화당 소속으로 문공위원장을 지냈던 사람으로 전혀 뜻밖의 인선이다.
7대 국회 문공위원장을 지낸 김종호씨 공천은 함종윤씨의 추천이라는 얘기. 공천 예비심사 때 함씨에 대해선 10·17 직후 함씨가 강원도 지방을 순회하며 10월 유신 지지연설을 하고 다녔고, 곧 공화당 쪽으로 갈지 모른다고 해서 공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심사위원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송원영씨가 함씨에게 전달, 공천을 단념하라고 사전 통고하자 함씨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김씨를 추천했다는 것.
함씨는 김씨가 7, 8개월 전 공화당서 밀려난 경위를 설명하면서 김씨를 추천, 송씨가 김씨를 만나 입당 의사를 확인하고 비밀리에 기탁금을 예치하도록 했다고.
김명윤씨의 강릉 지역 공천은 당초 춘천 쪽의 홍창섭씨를 강릉으로 전지 공천키로 결정, 홍씨의 양해를 구했는데 홍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심사위원인 유치송 씨가 김씨에게 연작, 사전 승낙을 얻었다는 것.

<진산·이철승씨 입김 큰 작용>
신민당의 이번 공천은 전체적으로 유진산씨와 이철승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흔적이 뚜렷하고 과거 비주류를 했던 사람이거나 유진산씨에게 비판적이었던 측은 거의 제거됐다.
지난해 10·17 이전까지 비주류를 했던 사람들은 8대의원을 지낸 사람을 제외하고는 최성석씨(무주-진안-장수)가 공천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무주-진안-장수의 경우도 최씨가 지난 선거에서 4백여 표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는 점과 경합했던 진산 계의 정규환씨(8대 전국구)가 전혀 연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이다.
한마디로 일단은 그 선거기반을 평가받아야 했던 8대의원 중 강원의 H씨, 경북의 H씨와 L씨 등의 탈락을 두고 당내에선『주류 직계와 경합된 비주류가 전반적으로 배척됐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후유증이 세차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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