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제30화 서북청년회-선우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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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청의 참뜻>
그 동안 문봉제동지에 의해 서청운동이 상당한 부분까지 다뤄져 내가 특별히 거론할 것은 없으나 서청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풀고 유명을 달리한 몇몇 동지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몇 마디만 보태고자 한다.
첫째, 좌익계에 대한 「테러」행위가 많이 소개되다보니 『서청=백색「테러」단』이란 인상을 일반이 갖기 쉬우나 내가 만든 서청의 목적은 「테러」자체가 아니였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서청의 창설목적은 한두마디로 설명하기 힘드나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에 근거한 완전자주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으로 대충 요약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서청운동은 어느 의미에서 독립운동의 연장이란 성격을 띤 것이었으며 모든 행동은 이 숭고한 건국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첫날부터 북엔 김일성이, 남엔 조공이 각각 나타나 적화음모 및 신탁통치 추진작업을 폈다.
이는 우리의 숭고한 건국이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또한 완전자주독립의 방해자가 아닐 수 없는 것.
이 방해자를 제거하다보니 자연 곳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테러」공방이 벌어졌고, 그 결과 서청의 「이미지」가 마치「테러」단인 양 못 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테러」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한가지였으며 결코 목적 그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점 일반의 이해를 구한다. 사실에 있어 우리는 「테러」뿐만 아니라 시국강좌·대북방송 등 서청의 목적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문동지의 글에서도 군데군데 소개됐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둘째, 「테러」사태 또한 서청의 선수로 빚어진 것은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40∼50대면 누구나 피부로 느꼈겠지만 「테러」란 원래 좌익측이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해방직후).
서청은 단지 그들이 주먹을 들고 나오면 주먹을 내밀고, 칼을 들이대면 칼로 맞섰을 뿐이었다.
물론 연속되는 소동 가운데 서청이 개별적으로 선수를 쓸 때도 적지 않았으나 원천적으론 그들이 먼저 실력행위를 구사했다는 얘기이다.
또 일반은 서청이 「테러」에 있어 무자비한 살육으로 일관한 것처럼 알기 쉬우나 우리는 대원들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힘자라는 데까지 노력을 했다.
실제 47년 겨울 남선파견대의 송별암동지(함남)가 신탄진의 지주 한영진씨 집에 침입, 20원을 강탈한 사건이 간부들에게 알려져 송동지는 수백명의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가벗긴 채 제재를 받아 반편이 됐다. 또 제주도에 파견된 모동지(성명미상)는 민폐를 일삼은 사실이 드러나 추방명령을 받고 각지를 배회하다가 전라도에서 끝내 자살하기까지 했다.
우리 대원들이 험한 일을 하다보니 부작용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규율은 그에 못지 않게 엄했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두고자 하는 것이다.
세째, 평청과 서청대원들 중 일부 주역이 이박사 및 조병옥·장택상 등 군정경찰과 제휴한 활동이 더러 소개돼 마치 서청 전체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처럼 오해하기 쉬우나 이 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반좌투쟁의 형편상 경우에 따라 이박사 등과 보조를 같이했다 뿐이지 맹목적인 추종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비롯한 일부 주역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 개인은 실제 이박사보다 김구선생에 더 의지했으며 이 점은 남선 「테러」의 사령관격인 임일동지도 마찬가지인줄 안다.
김구선생은 임정초대교통부차장이었던 나의 숙부 혁씨로 인해 우리 집안과는 남다른 관계에 있었다.
선생은 내가 아직 월남하기전인 45년 11월 역시 임정에 일을 봤던 끝의 숙부 훈씨(105인 사건의 1인)에게 『믿을 수 있는 평북청년들이 필요하니 보내달라』는 밀서까지 보내왔다.
내가 월남을 결심한 것도 선생의 이 밀서에 힘입은바 크며 46년 4월 평청창설로 청년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사실 또한 선생의 격려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박사와의 여러 가지 협조는 나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그렇다고 이박사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며 내가 이끈 초기 서청의 배후인물이 아니었다는 얘기일 따름이다.
경찰과의 협조관계도 마찬가지로 초기 서청에 있어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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