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 집에서라도 안심하고 살게 해줘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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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11일 밤 부산시 북구 화명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어머니 홍모씨와 자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어머니가 베란다에서 두 아이를 팔로 꼭 감싼 채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현관 쪽에서 화재가 나자 어머니는 119에 신고한 뒤 아이들과 베란다 등으로 대피했지만 유독가스를 흡입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자동화재탐지설비와 비상벨 등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됐음에도 인명피해가 난 것은 생활공간의 안전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사고에 대비한 주민 대응 매뉴얼과 안전 교육·홍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실 1992~2005년 시공된 일자형 아파트 등의 발코니에는 사고 시 간단히 부수고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경량 칸막이가, 2005년 이후 시공된 타워형 아파트 등엔 방화문이 달린 대피공간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전시설은 실제론 세탁기 설치나 수납용 공간 등으로 쓰이면서 사고 시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안전설비 설치 사실과 이용법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 시 주민이 불빛을 보고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도등이나 형광 안내문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는 조항이라도 있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입주자가 이사 오면 관리사무소에서 대피·안전 관련 안내를 해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설비 따로, 안내 따로의 엇박자 행정이 빚어낸 비극의 재발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도시가 갈수록 수직화하면서 고층 생활·업무 공간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건설 중인 123층짜리 초고층빌딩에서 대형 화재나 테러가 발생할 경우 건물 안의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는 데 1~2시간이 걸린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설비와 함께 안전 교육과 훈련의 기준도 강화해야 한다. 내 집에서라도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