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전 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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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크고 작은 불난리가 꼬리를 물고 있다. 겨울은 화마의 계절인가 하는 넋두리가 나옴직한 요즈음이다. 그러나 어엿한 하나의 문명도시가 계절의 요인에 의해서 찾은 재앙의 엄습을 받고 계절의 자연적 천역에 의하여 비로소 그 재앙으로부터 해방된다 해서야 어디 문명도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명이란 본시 자연의 폭력을 인위의 슬기로 제어하여 그를 인류의 이익으로 전환시킨 데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문명의 가장 큰, 최초의 개가가 불의 발명이었다. 불이 곧 인류 앞에 새로운 문명의 역사를 약속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은 모든 문명을 회 진해버리는 자연의 폭력을 언제나 유보해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인류의「제2의 불」이라고 하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전기의 발명은 분명 인간의 문명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이 인류의「제2의 불」도 또한「제1의 불」과 마찬가지로 문명의 소산을 하루아침에 회신해 버릴 수 있는 폭력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최근 도시생활에서 빈번히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연말 시민회관의 화재 대 참사가 누전 때문이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 주말의 서울대학교병원 화재 역시 끄지 않은 전기「곤로」에 화인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번 주초의 서울시내 다동「맥주·홀」의 화인 또한 누전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 문명의 축복이라고 할「제2의 불」을 스스로 다스릴 능력이 없어 복을 화로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천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재라고 할 것이다.
인재의 요인은 도처에 깔려있다. 제2의 불을 실어 나르는 전선부터가 시원치 않다. 검사조차 받지 않은 불량전선이 마구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건물이나 가정에 들어와 있는 배선은 수명이 다된 낡은 것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배선공사를 맡은 업자나 준공검사를 하는 관원도 눈감고 아옹하는 식의 안전관리에 만족하고 있다. 이래서 일상생활의 시계밖에 있는 배선공사의 위험을 가려내기란 사고가 나기 전에는 어렵다. 이것이 KS 「마크」를 단 각종 전기 기기도 그냥 믿을 수만은 없다. 가정생활의 또는 사무실의 민첩한 사환이라 이르는 전기기구는 평소에는 다시없는 문명의 이기인체 하다가도 언제 문명의 폭 기로서 둔갑하게 될지 안심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전기와 전기기구를 다루는 사람들 자신도 사용인으로서 실격자인 경우가 많다. 전기의 안전장치·안전관리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그를 부리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면 시내 한강변의「아파트」촌에는 화재자동경고 기라는 것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화재도 나지 않았는데 이 자동경고 기가「벨」을 울려 잠자는 주민들을 소스라쳐 자리에서 깨우게 하기 일쑤이다. 이처럼 전기 기기의 자명종에 대해서도 불신이 만성화된 다음에는 정말 불이 나서「벨」이 울릴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만 해보아도 그저 끔찍해지기만 하다.
도시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전화생활을 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 문명의 폭 기로 둔갑할지 모르는「제2의 불」이 우리들의 생활주변의 구석구석에 그 복병을 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거미줄 같은 이 복병의「네트워크」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이 복병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주의를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당국과 국민은 이 같은 전기의 안전관리에 새로운 각성과 조처가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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