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실존주의 철학자「칼·야스퍼스」유고 곧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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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칼·야스퍼스」가 1969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출판되지 않은 채 있던 유고가 서독「뮌헨」의「클라우스·파이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리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에드문트·후설」이래「마르틴·하이데거」와 함께 현대의 가장 위대한 독일철학자로 알려진「칼·야스퍼스」는 실존철학분야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나치즘」과 원폭에 반대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86세에 세상을 떠난「야스퍼스」의 미간유고는 3만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그가 말년을 보낸「스위스] 의 여러 기관들이 출판 비를 마련하려고 활동하고 있다. 72년 말의「유네스코」총회가「국제철학 및 인간과학협의회」에 협조를 요청한 바도 있다.
「야스퍼스」의 유고가운데는「하이데거」에게 보낸 편지 등 많은 서한이 있다.
「하이데거」와「야스퍼스」는 같이 당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그들 사이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계 면에서 기본적인 차이가 있듯이 지적개념에도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형이상학에 관심을 갖지만「하이데거」가 시적이고 마술적인 면이 있는데 반해 「야스퍼스」는 판단의 자유, 이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유고가운데는 또 정신병리학, 심리학에 관한 상당한 양의 원고가 있으며 전기·정치·역사에 관한 글들도 있다.
특히 독일에 관한 미완성저서가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저서는 독일이 정치적으로 세계의 소규모지역 사회에 뿌리를 둔 전통을 지닌 국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스퍼스」의 유고에는『세계철학사』가 가장 방대한 저서로 알려지고 있다.
「야스퍼스」는 철학의 역사를 흔히 보는「유럽」의 관점에서가 아닌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기원전 800년∼200년 사이에 중국·인도 및 소「아시아」와「그리스」등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은 3개의 중심지가 동시에 생겨나 위대한 가설과 기초적인 이상을 낳고 그후의 모든 철학적 전통을 탄생시키고 살찌게 했다는 것이다.
한편 독일에 관한 그의 유고는 상당한 부분이 독일 내「레지스탕스」를 다루고 있다.
당시 그 자신은 병중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었으나 독일 내 저항운동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치밀하게 관찰했다. 1945년「야스퍼스」가 그의 아내와 함께 추방되기 직전에「하이델베르크」가 미군에 의해 해방되어 패망과 파멸의 괴로움을 겪는 속에서 대학의 강의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는 첫 강의시간의 주제로「죄」를 택했던 것이다. 전선에서 귀향한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대한 폐허 속에서「우리들의 죄」라는 주제의 강의를 했던 것이다.
「야스퍼스」는「나치즘」을 지지한 일이 결코 없으면서도 그가 독일인으로서 엄청난 전쟁을 겪고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야스퍼스」의 유고는 이미 출판된 다른 저서와 함께 20권의 전집으로 나올 예정이다.

<「유네스코·피처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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