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삼국통일의 전초기지|3년 산성|단국대 고적조사반 밝혀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충남 보은에 있는 삼년상성은『삼국사기』에도 오르내리는 고성이고 석성의 윤곽이 지금까지 완전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아직 사적으로조차 지정을 못 본 채 방치된 산성. 이 산성을 수 백년동안 주목해온 단국대 박물관은 최근 이곳을 답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있어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 전초기지였음을 밝혀냈다.
정영호 교수가 이끄는 보은지구 고적조사반은 지난 16일∼23일 삼년 산성 일대의 유적과 지세를 조사하고 ①신라가 소백산맥이북에 설치한 맨 처음의 군사기지로서 ②한강 이남 땅을 확보하여 중국과 왕래하는 길을 여는데 첫 발판이 되었으며 ③고구려 공략에 있어서도 상주에서 보은∼청주∼이천(남천정)∼한주를 연결하는 군력의 출구였음을 확인해 냈다고 주장했다.
앞서 경주에서 상주∼옥천을 거쳐 부여에 이르기까지『김유신의 백제공략로연구』를 조사, 발표한 바 있는 정교수는 이번에 다시 고구려 공략로의 조사를 착수한 것인데, 삼년산성의 전략적 성격 규명은 그 첫 개가이다
삼년산성은 보은읍내에서 동쪽으로 2km. 상주 가는 길과 법주사로 가는 갈림길 못 미처에 있는 커다란 석성이다.
나직한 야산 위에 성 주위가 약 1.2km이고 현존 성벽 높이 10m. 겹성으로 성벽 위의 통로 폭이 6∼7m이며, 성의 도어남북 네 귀에는 망대가 있었고 석축이 많이 허물어졌지만 군데군데 석벽이 완연할뿐더러 서쪽 중앙부에 성문의 심방석까지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첫 축성은 신라 자비 왕 13년(407년). 3년을 쌓아 삼년산성이라 했다고 한다.
16년 뒤인 조혜왕 때에 개축했고, 진흥왕 15년(554년)에 옥천 고리산성(환산성)을 공격해 백제성왕을 사로잡을 때도 삼년산성의 장병이 대거원병으로 참전했다고 기록돼 있다.
정 교수는 ①김유신의 조부 김무력이 충북일대를 정벌해 신주를 설치(553년)한 것이나 ②김유신의 출생지가 충북 진천 길상산이며 ③문무왕 때 삼년성 태수 열기가 소정방에게 사신으로 가며 또 ④백제 건국 초기의 도읍지가 안성·천안 일대로 유추되는 사실 등이 모두 이 삼년산성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에서 더욱 주목했다.
정 교수는 이 고장이 관광지로서 번창하고 있지만 모두 법주사 본찰만을 주목할 뿐 그 밖의 유물유적이 전혀 조사·규명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속리산 탈골암법당에 안치된 석조여래좌상은 10세기 후반 고려 초의 석불인데 탑석처럼 다듬은 방형대좌의 양식이 특출한 것이고(총고 2m·불장좌고 92cm), 또 마노면원정리 탑산마루의 4m높이 고려석탑은 지정 보호할만한 것이며, 여적암의 청석탑, 복천암의 수고화상(1480년)과 학조대사(1514년)의 부도탑도 주목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