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따라 변질될 월남휴전협정|모호한 문제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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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문과 9장 23조로 구성된 월남휴전「협정」은 54년의「제네바」협정과 마찬가지로 이미 그 자체 안에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을 그냥 지나쳤거나 해석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곳곳에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하 「협정」의 문제점들을 구성형식과 본문내용으로 대별해서 살펴본다.

<구성형식의 문제>
첫째, 이「협정」은 여느 휴전협정과는 달리 정치적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며 군 총사령관 대신 외무장관들이 서명한다. 이것은 휴전협정의 일반형식을 벗어난 것으로서 국제법상 조약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53년 한국휴전협정이나 54년「제네바」휴전협정 등 지금까지의 모든 휴전협정은 군사령관끼리의 서명으로 이뤄졌다).
그런데「협정」이 이처럼 조약의 성격을 갖는다면 4자(미·월·월맹·「베트콩」)가 동시에 서명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정부승인」으로 간주된다.
「파리」에서의 서명절차를 1, 2차로 나눠서 본문의 국명호칭을 삭제하고 전문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즉 4자가 모두 서명하는 1차 때에는 조약 원문에 5차례나 나오는「베트남」민주공화국(월맹)이라는 단어가 모두 삭제되며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PRG)라는 단어가 사용된 전문도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서명이 월맹이나 PRG에 대한 정부승인으로 간주되는 것을 두려워한「티우」의 주장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4자간의 상호「정부승인」효과는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명자의 신분을 밝힐 때 각자 자신의 국명을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정부승인」까지는 안 간다 하더라도 월남이 PRG를「교전단체」로 승인했다는 해석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라오스」나「크메르」정부 PRG에 대해서도 전시국제법상의 중립의무를 지게되며 이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둘째,「협정」이 조약의 성격을 가짐으로 해서「티우」정권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정부는 이「협정」을 소위 행정협정의 일종으로 간주한다고 시사했으므로 상원의 동의 없이도『서명과 동시에 발효』할 수 있지만 월남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편의수단이 없다. 당연히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한다는 것이 타당한 해석으로 된다.
따라서「티우」는 자기가 원할 경우 의회에 회부해서 부결시키면 지극히 합법적으로「협정」자체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내용의 문제>
첫째, 14만5천명의 월남 안 월맹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의 계속 주둔을 묵인했다. 반면 미군 및 기타 외국군은 월남 안에서는 물론「라오스」와「크메르」에서도 완전히 철수하도록 규정했다.
둘째, 휴전의 보장기구들이 갖고 있는 취약점이다. 「협정」은 보장기구로서 ⓛ4자(미·월·월맹·PRG) 공동군사위 ②2자(월남·PRG) 공동군사위 ③국제휴전감시 위 ④12국 국제회의를 설치하거나 소집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4중의 보장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효과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전망은 전연 없다. ①③은 모든 행동을 만장일치에 의해서만 취할 수 있고 ②는 견 원의 상종이므로 상의나 합의란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 그리고 12국 국제회의는 중공과 소련이 민족자결의 원칙을 내세워 거부할 가능성이 짙을 뿐 아니라 54년「제네바」9개국회의의 경험에 비춰봐서도 도저히 기대를 걸 수 없는 것이다.
세째, 이번「협정」이 현상동결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이에 대한 법적 근거나 명분을 하나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민족화해평의회가「만장일치의 원칙」을 전제함으로써「행동의 사산아」가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사이공」정부가 자신의 합법성을 주장할 근거가 단 한군데도 안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본문에서는「사이공」정부를 PRG와 완전히 동격으로 취급해서『남부「베트남」의 두 당사자』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17도 군사분계선도 정치적·영토 적인 의미가 없다고 못박았기 때문에「티우」의「1민족·2정부」주장은 크게 흔들린 셈이다.
결국 이번「협정」은 미군철수와 포화의 정지 등 군사적 측면에서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평화회복의 필수조건인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모든 것을 「당사자」들의 결정에 맡긴다는 것은 곧 분쟁의 재발과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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