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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안보 걱정에서 오는 금융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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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융시장의 불안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셀 코리아'에 대한 우려 속에서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달러 환율은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외평채에 대한 가산금리는 몇달새 30%나 올랐고, 한국 기업들은 돈 빌리기가 어려워졌으며, 단기부채 비중도 커졌다.

가계 대출과 카드 빚 연체가 늘면서 새로운 금융불안을 예고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는 위축되고 물가는 급등하는 가운데 금융 불안이 가중되면서 한국경제는 사면초가의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급히 미국으로 날아가고, 재경부 장관과 은행장들이 긴급회동을 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도, 그만큼 사정이 급박하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라크전과 세계경제 불안이 주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투자 위축과 정책의 불확실성 등도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예견돼 왔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단기간에 급속히 악화한 것은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된 데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국제사회에 믿음을 주지 못한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핵(北核)문제를 놓고 노무현 정부와 미국 간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한반도에 대한 위기설로 이어졌고, 이것이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을 기피하고 금융불안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핵은 안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에 더욱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현 금융불안이 경제적인 접근만으론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한.미 간 동맹관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양국 간 공조는 확고하고, 한반도에는 위기가 없다는 비전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금융 불안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새 정부는 과연 우리 경제가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부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생존 기반인 경제가 안정되지 않고서는 안보도 어렵고, 개혁은 더더욱 힘들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