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피셔 양 날개로 Fed 균형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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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탠리 피셔(70) 전 이스라엘은행(BOI) 총재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입성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피셔가 Fed 부의장에 지명될 예정”이라고 11일(현지시간) 일제히 전했다. 그가 올 6월 말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에서 물러난 지 약 반년 만이다. 그는 재닛 옐런(67)이 내년 2월 1일 Fed 의장에 취임하면서 내놓을 부의장 자리를 물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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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셔의 상원 인준은 무난해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피셔가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지지도 고루 받고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다. 인준을 지연시키기 위한 필리버스터(의사지연 발언)도 금지됐다.

 마침내 오바마표 Fed 진용이 갖춰진다. 애초 버냉키는 그의 사람이 아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오바마는 금융위기 탓에 버냉키를 유임시켰다. 금융전문인 글로벌파이낸스는 “오바마가 집권 5년 만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Fed 리더십을 구축한다”고 이날 보도했다. 옐런과 피셔가 오바마 2기 금융통화정책의 양날개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피셔의 발탁에 대해“옐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고 평했다. 바로 금융위기 대처 능력이다. 옐런은 통화정책 전문가다. 위기 순간 소방수 역할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반면 피셔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로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응했다. 옐런을 앞세워 실물경제를 살리고 피셔를 활용해 금융위기 재발을 막겠다는 게 오바마의 뜻인 셈이다.

 피셔는 조용한 2인자와는 거리가 좀 있다. 옐런만큼이나 개성이 강하다. FT는 “피셔의 지명이 Fed 이사회 목소리를 한층 강화할 전망”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뚜렷한 사람이 의장과 부의장을 맡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지역 준비은행 총재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버냉키 시대엔 지역 총재들의 목소리가 컸다.

 옐런과 피셔는 궁합은 잘 맞을까. 피셔의 명성이나 영향력은 옐런 이상이다. 피셔의 별명은 ‘중앙은행가의 스승’이다. 그는 MIT 교수 시절에 버냉키 박사 논문을 감수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선생이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글로벌 금융계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다만 최근엔 피셔가 고배를 좀 마셨다. 2011년 IMF 총재 자리를 원했으나 관례에 따라 프랑스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에게 돌아갔다. 몇몇 외신은 “그가 버냉키 이후 Fed 의장 자리를 놓고 옐런과 경쟁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FT는 “이런 피셔가 옐런 정책을 적극 지지할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다.

 사실 두 사람은 소신이 정반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일하다고 할 수도 없다. 옐런은 돈의 가치보다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는 인물이다. 올 10월 의장 지명수락 연설에서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어 고통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피셔는 선제적 대응론자다. 그는 “자신이 언제 비둘기(성장론자)여야 하는지 또 언제 매(통화가치 수호자)가 돼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비즈니스위크). 실제 그는 2005년 이후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이스라엘 경제를 잘 관리했다. 그가 2009년 이후 4년 연속 세계 최고 중앙은행가로 평가받은 이유다.

 이런 두 사람 앞에 놓인 미 경제는 올 3분기에 3.6%나 성장했다. 11월 실업률은 양적완화(QE) 축소에 나설 수 있는 7%까지 떨어졌다. 민주·공화 하원 대표들은 내년도 예산 증액에 합의했다. Fed가 움직일 여지가 커졌다는 얘기다. 실제 이달 17~18일 통화정책회의에서 QE가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11일 다우지수가 10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반면 미국 물가가 목표치(2%)를 밑돌고 있다. 올 11월 물가가 전달보다 0.1% 떨어졌다. 몇몇 전문가는 디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플레 우려는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또 최근 실업률 하락 이면엔 구직 포기자의 증가가 똬리를 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지금까지는 피셔가 QE를 적극 지지했다”며 “앞으로는 옐런을 보완해 Fed가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옐런이 너무 성장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견제할 것이란 얘기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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