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경제 교류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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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4공동성명을 계기로 하여 각 분야에서 남북 교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류론 중에서 경제 교류의 현실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라고 일부에서는 논하고 있는 실정인데 경제 교류가 과연 가장 쉽다는 논거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의견이다.
대체 경제 교류란 무엇이며, 그 교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비록 교류가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얼마만큼 교류가 될 수 있을 것이냐는 당연히 질문되어야 할 사항이다.
우선 경제 교류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이 뒤따라야 하겠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경제 교류란 국제수지표상에 계상 되는 모든 항목의 거래를 총칭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품거래·용역거래·증여, 그리고 자본거래를 총칭한다. 그러므로 경제 교류란 인적·물적·자본적 거래를 다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본질적으로 문화 거래이며 동시에 비정치적 거래의 전부를 뜻한다 할 것이다.
이러한 거래가 가능하려면 당연히 정치적 거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체육 교류·문화 교류보다 경제 교류가 더 쉽다는 가정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의견에 불과하다.
오늘날 일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 교류란 협의의 경제 교류인 상품거래를 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다. 따라서 경제 교류의 분야인 상품거래, 즉 상품무역의 가능성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그 범위는 어느 정도일 것인가에 대한 필자 나름의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상품 무역의 성질>
상품무역은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남북간의 산업 구조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는 점이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만 남북간의 상품거래를 논할 수 있다.
또 상품무역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거래 당사 경제권 내의 산업구조가 무역에 적합하도록 변화하는 것을 다 같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교역은 하되 자체의 산업 구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면 그 교류는 경제적으로 교류가 아니라 정치적 교류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남북경제교류가 가능하려면 피차간에 산업구조의 변동을 받아들인다는 정치적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불행히도 필자는 북한의 산업구조에 관해서 자신 있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연구한 실적이 없을 뿐 아니라 신뢰할만한 분석 자료도 갖지 않고 있다.
때문에 남북간의 상품거래가 가능한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제시할 입장은 아니라 하겠다.
다만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북한경제가 형성되고 성장되어 온 것이므로 북한 경제의 정책 기조로 미루어 보아 남북간의 상품거래가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의 것인가를 의견으로는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회주의 경제의 정책기조>
자본제 경제의 운행 원리가 소위 가격 기구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자본제 경제에서의 경제 계획은 가격 기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 계획의 유무에 불구하고 가격 구조야말로 자본제 경제의 본질적 조절자라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만 북한 경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본제 경제에서는 생산분배, 그리고 유통이 모두 가격을 매개로 한다. 따라서 무역에 있어서도 가격 비교가 1차적인 교류 가능성을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반면 사회주의 경제에 있어서는 비록 가치법칙이나 가격현상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경제의 조절자는 아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모든 경제 행위가 경제 계획에 의거하여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 계획 자체가 유일한 경제의 조절자인 것이다.
따라서 계획과 실적에 괴리가 발생하면 계획을 조정하는 것으로서 경제는 움직이는 것이므로 자본제 경제에서의 가격기구와 사회주의 경제에 있어서의 경제 계획은 정대칭 관계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경제에 있어서의 무역은 계획집행에 따른 물적 수급 「밸런스」의 변화를 보완하는 성질의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사회주의 경제에서의 무역은 계획수급은「밸랜스」상의 과부족을 메우는 성질이기 때문에 가격기구의 작용에 따라서 기업화해 나가는 과정으로 나타나는 자본제 무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를 상식적으로 말하면 사회주의 경제의 무역의 동일상품의 거래지속성은 상상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정책의 기본 구조하에서 사회주의 경제정책은 경제 성장률의 가속화와 대단위 공장 생산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생산수단의 생산강화에 집중적인 노력을 쏟는 것이다. 이른바 중화학 공업을 우선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기계류, 특히 공작 기계류 생산을 최우선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본제 경제에서의 산업 발달사와는 정반대의 산업사를 추구하는 것이 사회주의경제의 특질이다.

<북한의 경제 및 무역정책>
사회주의 경제에 있어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경제는 정치적 목적을 뒷받침 할 뿐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따라서 정치 방식을 조정해 나간다. 따라서 북한의 대외무역이 내포하는 제약 요인을 계획 기술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모든 분야에서 자주·자립·자위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대외 거래가 운영되고 있다. 그리하여 북한은 『자력 갱생의 가치 하에… 자립적 민족주의 경제건설과 자립적 무역구조의 수립』을 기본방침으로 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북한은 경제 계획수단의 하나로서 무역을 하는 것이며 그 경제 계획은 사회주의 건설을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순경제적으로 이를 풀이하면 무역은 국내경제정책의 종속물이며 동시에 보호주의에 철저할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분업화를 거부하는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대외거래>
사회주의 경제에 있어서의 무역은 수입을 전제로 수출을 계획하는 것이 원칙이다. 계획수행에 필요한 수입품을 계산하고 그 대가 지불 수단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경제의 대외거래에서 중시해야 할 점은 무엇을 수입하고자 하는 가이다. 필요 수입을 조달하기 위하여 염출하는 수출은 경제적으로 큰 뜻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대외거래실속과 수입상담상황을 분석함으로써 북한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북한의 대외 상품 거래는 70년의 경우 수출3억3천만 「달러」 수준에 수입 3억7천4백만 「달러」 수준이며 총수출입의 52.8%는 대소 거래이다. 전체 공산권 거래의 존재율은 81.7%이고 기타 지역 거래는 18.3%에 불과하다. 따라서 북한의 비공산권 거래는 1억2천8백만「달러」에 불과하며 그 총수입은 5천만 「달러」를 점할 뿐이다.
한편 북한이 자체의 경제 계획 진전에 필요해서 비공산권 제국에서 수입하고자 상담을 벌인 품목을 보면 북한의 공업화 단계와 정책 추진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59년 이후 북한이 일본측에서 수입하고자 하는 분야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력발전시설·석유정제시설·합성수지공장·세제공장·「나일론」공장·「아크릴릭」공장·합성고무공장·「알루미늄」공장·선박·「디젤·엔진」공장·제지공장·TV방송설비·석유화학「콤비나트」·어류냉동시설·소비재생산시설 등이다.
또 북한은 「프랑스」에서 가소제공장·TV방송시설·정유시설·「아크릴릭」공장을, 서독에서 발전소·제화공장·제철·석유화학공장을, 화란에서 냉동선을, 영국에서 석유화학관계공장, 「데토론」공장을, 「핀란든」에서 제지공장을,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냉간압연공장을 수입하고자 상담을 벌였거나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수입상담을 분석할 때 북한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장건설을 위한 시설이지 소비재나 원자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 계획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현대적 시설이며, 이를 통해서 국내 소비재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산업시설도입에 필요한 대전 조달하기 위해 북한은 철광석·무연탄 등 광물과 철강·아연·선철·압연강재·공패류·「시멘트」·금속제품·소비재·섬유제품·수산물 등을
수출하고 있는데 이들 품목은 우리의 수출품목보다 앞서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성질에 있어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하겠다.

<상품 거래의 범위와 한계>
북한의 경제적 교류 또는 상품거래가 가능하다면 과연 어떤 것이 되겠느냐하는 질문에는 몇 가지 가정 하에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남북의 산업구조를 통합된 단위로 예정하고 상품거래를 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이에는 체제적인 벽을 넘어야 한다는 두꺼운 장애물이 있다.
만일 이 벽을 넘을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면 전체산업의 재구성이라는 각도에서 남북은 분업원리에 입각하는 상품거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이 경우에는 엄청난 거래규모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기본 전제로 하는 북한이 이러한 근본적 계획수정 요인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분업의 원리에 따른 상품거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수입이 성질상, 북한의 경제 계획 집행상 봉착한 애로 요인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원용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남북상품거래를 하는 것은 곧 북한의 경제 계획을 지원하는 것이 된다.
또 북한은 그러한 품목에 한해서만 수입하려할 것이므로 이를 정부가 인정할 때에만 상품 거래는 가능하다. 이러한 인정을 현 단계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셋째, 분업의 원리에 입각한 남북교류를 기대할 수 없으며 또 정부가 북한의 경제 계획을 지원하는 방식의 거래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라면 거래 여지는 매우 제한될 것이다. 무엇이 남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피차간 체면을 잃지 않을 품목을 발견하고 또 상대방의 경제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 않는 품목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 분야에 한해서 상품거래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제주도의 밀감을 북쪽에 보내고 명태를 가져오는 정도라면 피차간에 체면을 손상시키지도 않거니와 경제력에 별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의 범위를 넘어서 상품거래가 형성된다면 약간의 문제점이 정치적으로 제기될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북한에 의류를 수출한다고 가정해도 문제는 분명해진다. 다양한 색상과 자본제적 「디자인」이 북한에서 소화되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겠기 때문이다.
요약컨대 현 단계에선 전반적인 남북경제교류는 기대하기 어렵고 제한된 상품교류만이 그 가능성을 어렴풋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그것은 매우 형식적이고 「제스처」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정치문제가 경제교류를 가능하게 할만큼 폭 넓은 범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본사 논설위원 이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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