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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과 악수' 싸고 미국 시끌 … 빛바랜 만델라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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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1일 남아공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시신을 운구하는 군 장교들이 유니언 빌딩에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 청사가 있는 유니언 빌딩은 1994년 고인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취임 선서를 한 곳이다. [프리토리아 AP=뉴시스]

역사의 거인을 보내는 자리는 그 자체가 역사가 되기 마련이다. 10일 치러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세기의 추도식’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이날 식장 객석에 입장하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악수를 청한 게 논란이 됐다. 많은 이는 마디바(만델라에 대한 존칭) 정신의 계승으로 여겼지만 미 정가에선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공화당의 쿠바계 상원의원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는 “오바마 대통령이 카스트로 의장과 악수하려 했다면 만델라의 정신이 쿠바에서 부정되는 이유부터 물어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리애나 로스레티넌(공화·플로리다) 하원의원 역시 오바마가 냉혹한 독재자의 피 묻은 손을 잡은 것이라며 “(악수가) 이 독재자에겐 선전거리가 될 뿐”이라고 폄하했다.

 같은 당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은 아예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의 악수에 비유했다. 체임벌린은 유화적 외교책을 펼치다가 히틀러의 나치 침략주의를 용인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파장이 거세지자 백악관은 10일(현지시간) “미리 계획되지 않은 우연”이었다고 해명에 나섰다. 민주당 선거전략가를 지낸 폴 베갈라는 CNN 인터넷판 기고문에서 이날의 악수가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혹은 만델라와 데 클레르크의 만남’에 비유되는 것일 수 있다고 옹호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 셋째)이 넬슨 만델라 추도식장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왼쪽부터)와 함께 웃으며 ‘셀카’를 찍어 구설수에 올랐다. [CNN방송 캡처]

 반면에 만델라의 타계를 애도하는 성명을 냈다가 티파티 등 강경 보수층의 비난을 사는 공화당 의원들도 있다. 에런 쇼크(일리노이)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만델라를 “우리 시대의 조지 워싱턴(초대 미국 대통령)”이라고 찬양했다가 “만델라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런데 악마가 아니라 조지 워싱턴이라고?” 하는 반박을 샀다. 만델라는 백인 정권에 무장투쟁을 벌이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하운동 시절 공산주의 이념에 빠졌다. 석방 후인 91년 쿠바를 방문해 카스트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공화당의 강력한 대권 주자이자 보수층에서 지지를 받는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도 마찬가지다. “만델라 의 유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가 강경 보수 네티즌들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하고 있다. 만델라를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앙한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역시 같은 신세다.

  중국은 만델라 추도 분위기에는 동참하되 ‘민감한 보도’를 통제하는 분위기다. 11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만델라가 타계한 후 각 언론 매체에 수 차례 공문을 보내 만델라의 인권 및 민주화 관련 발언을 부각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와 함께 만델라와 친분이 있었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 대한 보도도 금기시됐다. 달라이 라마는 96년 만델라 재임 시절 남아공을 방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남아공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달라이 라마 입국을 거부해 왔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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