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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손대지 마" … 하퍼·푸틴 그들만의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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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러시아와 캐나다가 북극을 두고 맞붙었다. 캐나다가 북극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자, 러시아가 군사력을 앞세워 수호에 나선 것이다. 막대한 북극해 자원을 노리는 이들의 패권 경쟁 뒤에는 사실 고집 세기로 유명한 양국 정상의 집념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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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가 지난주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UNCLCS)에 제출한 신청서는 자국의 영유권 인정 수역을 120만㎢ 확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서울의 2000배에 가까운 면적이다. 캐나다는 동시에 북극도 추가 수역에 포함된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추후에 추가 제출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당초 초안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지만 막판에 스티븐 하퍼 총리의 지시로 북극이 포함됐다고 캐나다 일간 글로브앤드메일은 전했다. 존 베어드 캐나다 외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히며 “행정부 공무원과 과학자들에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면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러시아가 발끈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음 날 곧바로 국방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고 ‘북극해에서의 국익 보호’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선포했다. 푸틴은 군 고위 간부들에게 “북극해는 자원 개발과 국방의 핵심 지역”이라며 “국익과 국가 안보를 지켜내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소련 시대 때 운영했던 북극해 연안의 군사 기지를 내년 중 재건하라고 지시했다.

 국제법상 현재 북극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는 국가는 없다. 러시아·캐나다·덴마크·노르웨이·미국 등 북극해 연안 5개국만이 200해리(약 370㎞)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인정받을 뿐이다. 이를 넘어선 북극해 수역은 공해다. 하지만 자국의 대륙붕이 북극까지 연결돼 있다는 걸 입증하는 국가는 북극의 영유권을 인정받고, 독자적인 해저개발권도 획득하게 된다. 대륙붕은 영토로 인정되는 까닭이다. 단 유엔해양법협약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했다. 바로 지난 6일이 캐나다가 협약 인준을 받은 지 꼭 10년 되는 날이었다. 캐나다가 과학적 입증자료도 없이 급하게 북극 영유권부터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역시 2001년부터 북극해 영유권 확장을 추진해왔다. 당시 러시아도 유엔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북극점 바로 옆에 있는 해저의 로모노소프 해령(海嶺)이 유라시아 대륙의 연장 대륙붕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엔은 인정도 거부도 하지 않은 채 추가 조사를 진행하라고 결정했다. 러시아는 10년 만료 시점인 2007년까지 입증자료를 마련하지 못했고, 결국 잠수부가 로모노소프 해령에 러시아 국기를 꽂는 퍼포먼스를 통해 상징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번에 캐나다가 추가로 영유권을 주장한 수역에는 바로 이 로모노소프 해령도 포함된다. 푸틴이 더욱 분개하는 이유다.

 러시아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캐나다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입증자료를 내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구상에서 가장 야심차고 대담한 영토 확장 계획”이라며 캐나다를 비꼬기까지 했다.

 이처럼 양국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이유는 바로 자원 때문이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해에는 900억 배럴 상당의 석유와 47조2890억㎥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이는 미발굴 석유의 13%, 천연가스는 30%에 해당하는 양이다. 북극 신항로 역시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하지만 양국의 신경전은 다분히 두 지도자의 북극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북극해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푸틴이 처음 권력을 쥔 2000년 직후였다. 북극은 ‘소련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에게 핵심 지역 가운데 하나다. 푸틴이 북극해를 거론할 때면 항상 국가 통합을 함께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대통령이었던 2009~2011년 러시아는 노르웨이와의 북극 항로 협정을 맺는 등 북극해 연안국과 주도권을 나눠 갖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푸틴이 복귀한 뒤 북극 야심은 다시 추진력을 얻었다.

 하퍼 역시 2006년 집권 이후 북극해 영유권 확장을 소속 보수당의 주요 강령으로 견지해 왔다. 침착한 지략가이지만 결단력과 뚝심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하퍼는 이런 노력을 ‘북극 주권 회복’이라고 강조했고, 캐나다를 ‘북극해 국가’라고 불러왔다. 또 여름마다 북극해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열고 참관해왔다. 2010년에는 “산타클로스는 캐나다 국민”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두 지도자 모두 현재 국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달 초 여론조사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61%로 확인됐는데,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당장 소치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차르’로서의 위상 회복이 시급한 그에게 북극해에서의 영향력 확장은 평소 표방하던 강한 러시아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딱 맞는 소재다. 하퍼 역시 상원의 세비 유용 스캔들 등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올 7월에는 보수당이 20%대의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자 급하게 개각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이런 하퍼에게도 북극 영유권 주장은 국면 전환용 카드가 될 수 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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