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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고대사 시민적 입장서 재정립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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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박동순 특파원】최근에 와서 피크를 이루고 있는 일본의 이른바 고대사 붐을 계기로 일본의 역사를 동아시아라는 보다 근원적이며 객관적인 시대 및 지역의 차원에서 재정립하자는 움직임이 급작스레 활기를 띠며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 역사의 기조가 돼온 황국사관이 무너지면서 이미 태동된 것이나 아직도 많은 역사학자들이 국수·주도적 태도를 완전히 탈피치 못하여 전후의 올바른 사관의 정립이 저해돼 왔다. 따라서 일본의 일부양식있는 사학자들은 전후에 이어 다시 한번 일본의 사학계가 자세를 전환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비전문가들의 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아직도 부분적이긴 하나 일반 시민들의 호응까지 얻고 있다는 점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시민 호응 얻어>
예컨대 『일본 안의 조선문화』라는 계간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조선문화사는 몇 달 전부터 『일본 안의 조선우화유적 순회』 행사를 벌여 시민동호인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있는데 이번에는 『동아시아의 고대문화를 생각하는 모임』이 17일 동경교외의 진따이지에서 발족됐다. 일본의 신예 역사학자인 에까미 상지대 교수가 회장을 맡은 이 모임의 취지는 동아시아라는 넓은 차원에서의 새로운 일본의 역사상을 시민적 입장에서나마 밝혀 가자는 것이며 유적순회 심포지엄 강연회 및 기타 문화적 사업 등을 예정하고 있다. 에까미 교수는 일본민족이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남하했다는 이른바 『기마민족설』을 내세워 일본고대사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착시한 사람.

<일 신문들 왜곡보도>
등시에 사무국장인 스즈끼 명치대 교수는 『일본 국내만의 역사연구에서 탈피, 한국·중국과 멀리는 월남·인니 등에 이르는 동아시아로 대상을 확대해야하며 그러기 위해 일본의 천황릉도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즈끼 교수는 이날의 모임 발족취지 설명에서도 일본 신문들이 많은 새 역사연구자료를 왜곡보도하고 있으며 특히 얼마전에 아사히신문이 광개토왕릉비문을 에워싼 사실논쟁을 『한일학자 간의 대립』으로 보도하고 있는 점을 격렬히 비난했다.

<진짜 천황릉 4·5개>
에까미 교수는 일본의 사학계가 자세를 전환, 따라서 49개에 이르는 일본의 천황릉 가운데 확실한 것은 4∼5개에 불과하다는 『구실』을 명확히 밝혀내야 하며 일본역사 교과서의 고대사 부분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유적 순회대상에 강호성(궁성)까지 포함시켜 『궁성 안에 있는 한반도에서 건너와 가장 출세한 인사들도 만나보자』고까지 농담(?)삼아 얘기했다. 이날의 참가자는 1백여명.

<교과서 수정도 요구>
재문가는 몇 사람뿐이고 대부분이 회사원·학생·화가·사진작가이며 20대의 여학생에서 중년가정주부와 70세가 넘은 할머니까지 끼여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유적을 둘러본다는 단순한 취미에서 참가한 사람도 상당히 많고 따라서 영목 교수의 지나친 얘기에 반발하는 발언도 있었으나 적어도 역사를 올바르게 파악하자는 강한 지향만은 뚜렷이 느낄 수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발족 첫 행사인 이날의 순례지역이 옛 한인들이 이주 개발한 『다마지역』 이며 임지강사로서 『일본안의 조선문화』라는 단행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는 한국인작가 김달수씨가 초빙된 사실이다.
동경교외 무사시노 일대에는 지금까지도 옛 한인들의 발자취가 넓고 뿌리깊게 남아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모인 발족장소인 심대사의 창건자는 한인 이주자의 자손과 선주민 여인(역시 한인 이주자 온정씨의 딸)이 비련 끝에 맺어져 낳은 한국계 만공 스님. 본당에 안치된 국보, 김동석 가상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대사가 있는 마을의 옛 이름은 고마에고. 자연히 김달수씨의 설명은 고대한일관계 중심으로 엮어졌는데 사무국측은 일부참가자의 반발을 우려, 이 모임이 한국만이 아닌 『동아시아 연구』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으나 관동지역의 유적에서는 한국과 인연이 없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고 실토하기도.

<한국적인 일 유적들>
실제로 기자의 비전문적인 눈으로만 살펴봐도 일본도처의 유적과 전통적 문화들은 한국적인 것을 너무나 짙게 풍기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의 사관재정립움직임이 올바르게 진척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고대한일관계사를 전반적으로 다시 써야할 사태를 유발하게 된다는 관계전문가의 분석이며 이런 점에서 지금 일본의 역사학계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는 느낌인데 이러한 사관시정의 움직임이 가져올 하나의 결론적 가능성을 스즈끼 교수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즉, 『일본인의 6∼7할은 한국인의 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은 일본에서 이민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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