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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 72년 새 질서에의 여명-가능성의 모색 72년의 세계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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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문화·예술의 이즘(주의)과 네오(신)와 앙디(반)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이의 소화를 거부하고 지난, 날의 향수에 젖어드는 경향마저 보이고있다.
올들어 미국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한 대중취향의 50년대 회귀경향, 유럽에서의 로맨티시즘 추구경향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전후세대에서 시작되어 비트닉, 히피 반체제 운동으로 이어진 젊은 세대의 반문화 경향고 함께 72년의 세계가 지향한 문화 생활의 두드러진 새 흐름을 이루었다. 런던의 극장무대에는 미국의 복고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뮤지컬로 등장하고 미국 유럽 각 도시 서점에서는 내면적이고 로맨틱한 작가 헤르만·헤세의 작품이 장기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있다.

<동양적 현대극 시도>
유럽의 연극무대에는 미국에서 밀어닥쳤던 『오! 캘커다』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의 충격이 가시고 동양적인 환상을 쫓는 관객의 취향에 맞는 현대극에 대한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금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국제서적전시회에 출품된 논픽션류는 『그리운 옛날』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젖은 것이 대부분으로 출판업자의 약삭빠른 계산이 조류를 예민하게 반영하고있다.
칸느 영화제에서는 50연대 로세리니류의 네오·리얼리즘인 프란체스코·로지 엘리오·페트리의 작품들이 재 대두됐고 예술과 비예술의 한계로 논란이 거듭된 유럽 최대의 미술전이었던 서독 카셀의 도쿠멘타전은 혼란 속에서도 새로운 로맨티시즘 의 대두 가능성을 예고해 주고 있다.
60연대부터 70년대 초기까지 구미대륙을 광란시켰던 비트와 로크 음률, 섹스와 포르노그러피(외설)에 현깃증을 느낀 시대의 주역들이 갈구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미국판 신파영화 러브·스토리가 미국은 물론 세계의 스크린을 풍미하고 50년대의 영화가 미국의 TV 화면을 주름잡고 있다. 뉴요크와 워싱턴의 극장가는 50년대를 주제로한 연극으로 무대가 넘쳐흐른다. 당시의 비 드라머적인 뮤지컬 공연 때문에 관객이 장사진을 이룬다.
50년대의 영걸 아이젠하워의 상속자인 리처드·닉슨이 미국정치의 주역으로 크게 부상한 것과, 50년대의 르네상스가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과연 역사적인 우연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실상 지난번의 미국선거에서 닉슨의 일방적인 승리가 60연대의 악몽이 오기전인 불투명한 60년대에 대한미국인의 아련한 향수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견해가 두드러지게 등장하고 있다.

<불선 구상화재대두>
50연대의 한국전쟁, 수에즈 운하위기, 헝가리 사태, 스푸트니크 등으로만 점철된 정신면이나 섹스면에서의 울분이 폭발된 것이 60연대였다면 이제 60년대를 가능하게 했던 생명력과 희망이 소진하여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한 휴식기에 접어든 것이라고 규격화해 가는 사회를 신랄히 피판 해온 미국의 사회학자 마이쿨·해링턴은 진단하고 있다.
동구권에 대한 문화적 자유를 파시하기 위해 4년만에 열린 제5회 드쿠멘타 전에서도 소위 과잉 리얼리즘 ·개념적 리얼리즘· 해프닝 등이 눈길을 어지럽혔으나 이 전람회의 본류는 안정과 휴식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최후의 안간힘으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에서 60년대말 전성기를 이루었던 전위의 포프·아트와 오프·아트의 기세가 고개를 숙이고 구상화가 재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히피, 해프닝, 포프, 오프 등의 시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반전유파에 대한 전유파의 재대두에 따라 다운간 두 개의 큰 조류가 병행하리라는 것을 시준 해 준다.
과거에로의 회귀경향은 모든 것이 획일화한 계획에 지배되어 가는 불투명한 환경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불안정의 신호이며 이는 과거와 현재의 단기상태를 메우자는 욕망이며, 엉뚱한 동기와 목적이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고 서독의 예술평론가 아르민·할슈텐베르크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이 과연 쉽사리 이루어질 것인지에는 많은 문젯점이 따른다. 물질주의와 경제적 합리주의, 관료적 관리체제에 염증을 느껴 고개를 들고있는 미국에서의 새로운 로맨티시줌」, 초자연적인 신비성 추구로 연결되는 50년대로의 회귀 추세는 바로 이 문명을 요람으로 삼아 성장한 세대에 의해 모색된다는데서 자기모순에 빠진다.

<권력간섭 배제절규도>
또 식상한 문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체제』라는 괴물이 또 하나 거창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솔제니친은 72년 스웨덴 한림원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권력의 간섭에 의한 일국의 문학방해는 출판의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뿐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닫고 국민의 기억을 말살하며 정신적 통일을 빼앗는 것』이라고 절규하고 있다. 한 작가, 더 나아가 지식인의 이러한 비극은 비단 소련 뿐 아니라 아시아에도, 아프리카에도 남미에도, 존재한다.
특히 금년10월 프랑스의 문화 저널리즘을 대표하던 라·레트르·프랑세즈 지의 발간은 이러한 비극에서 또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나치스 시대에 레지스탕스로서 민중과 지식인을 연결하며 지식인의 사회참여에 기여하던 이 주간지는 공산당의 간섭을 받게되며 『강열한 생명과 정열』을 상실. 이에 저항으로 궁지에 몰려 폐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직접적으로 권력에 의한 간섭은 아니지만 사회·정치체제의 변혁에 따라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러한 몇몇 사례로 상징되는 72년 세계문화 흐름은 마치 60년대초기에 비틀즈 포르노그러피가 정통의 행세를 하며 출연하기 직전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안고 머뭇거리고 있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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