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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정조대왕 어필 야국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조대왕은 스스로 학문과 예술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 문예중흥의 새 기운을 크게 진작해준 분이다. 특히 서와 화에 대한 안목이 매우 높은 분이었으며 스스로 서화의 실기를 닦아서 비범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이 야국도는 이분의 유묵 중에서도 두드러진 작품의 하나였다. 원래 이왕가 동경저에 있었던 작품으로서 동경재주 일교포 유지의 손에 입수되어 동국대학교에 기증되어온 쌍폭 중의 하나였다.
이 화면에서 풍기는 높고 맑은 기품은 이 작자가 분명히 왕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도 남음이 있으며 그 원숙한 용묵에서 오는 청정한 묵색의 미묘한 변화라든지 묘선에 드러난 비범한 필세와 그 속력 있는 붓자국에 스며있는 눈에 안 보이는 기운 같은 것은 가히 왕자지풍의 실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조의 저서 『홍재전서』에도 회화에 관한 문조가 적지 않고 또 당시 사대부 화가로서 뛰어난 화론과 심미안으로 일세의 명문을 이루었던 표암 강세황은 왕의 짙은 애고를 받는 문신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조의 예술을 북돋워 준 배경으로서 정조의 회화예술형성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고 짐작된다.
정조대왕은 장헌세자의 아들로서 영조 28년(1752년)에 탄생했으며 왕으로서 재임하기 24년이었다. 불행히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갔지만 문예부흥의 영주로서 그리고 이조시대 왕도정치의 좋은 본보기를 보인 드문 임금으로서 남긴 치적은 단연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왕의 자는 형운, 호는 홍재였으며 호학의 왕자로서 그 호한한 『홍재전서』는 왕의 학자적 풍모를 담는 대저였다. 정조대왕의 화적으로서 가장 뚜렷한 것은 이 야국도와 그 대폭인 파초를 들 수밖에 없으며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묵매 또한 분명한 왕의 진적에 속한 다. [최순우<국립박물관학예연구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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