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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어제와 오늘|김동리씨 오탁번씨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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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30년대 초기 「조선」「동아」등 몇 개 신문사에서 「신춘문예」행사를 시작한 이래 40여년 동안 이 행사는 모든 문학지망생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수많은 문인들을 문단에 배출해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예를 찾아볼 수 없지만 이 행사를 통해 당선의 영예를 차지한다는 것은 곧 하나의 완성된 문인으로의 가능성을 보장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다시 신춘문예「시즌」이 돌아왔다. 34년 「조선」에서 시 입선, 35, 6년 「중앙」과 「동아」에서 각각 소설로 당선된 문단의 중진 김동리씨와 66년 「동아」에서 동화로, 67년 「중앙」(본지)에서 시로, 68년 「대한」에서 소설로 각각 당선한 오탁번씨와의 대담을 통해 「신춘문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여기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오=김 선생님은 신춘문예초기에 여러 차례 당선하신 경험이 있으시고 요즘엔 매년 그 심사를 맡아하시니까 「신춘문예」행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아시고 또 느끼시는 점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신춘문예행사가 시작될 무렵의 이야기부터 들었으면 좋겠읍니다.
김=신춘문예가 시작되기 전은 이른바 동인지 시대로 문학에 뜻을 둔 사람이 문단에 「데뷔」하기 위해서는 이들 동인지의 추천을 받아야 했지요.
당시「폐허」「창조」「백조」「조선문단」등의 동인지가 있었는데 책 자체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 글이 실려도 대단한 반응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고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이러던 중 30년대에 들어서면서 몇몇 신문사에서 「신춘문예」행사를 시작하자 문학지망생들의 관심은 그리 쏠리기 시작했지요. 신문사에서 작품모집을 한 것은 20년대 중반부터였는데 그때는 문학작품이 아니고 전설 실화 등이었어요.
오=「신춘문예」에 당선한다는 것이 그 무렵엔 얼만큼 문단진출에 보장이 됐었읍니까?
김=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32년엔가 석인해씨가 「조선」에서 소설로 당선되면서부터 였다고 생각되는데 그후 당선한 분들이 박영준 서정주 정비석 김영수 등이었읍니다. 물론 모집한 신문사는 당선작가를 성장시킬 것을 약속했고 그 약속이 대체로 이행되었지만 한 신문에서 당선하면 대체로 활동범위가 그 신문에만 제한되는 경향이 있었지요. 그래서 능력 있는 신인들은 여러 곳에 응모, 여러 곳에서 당선하는 예가 많았읍니다.
오=그 무렵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엔 대체로 「신춘문예」당선작가들이 당선이후 발표하는 글은 당선작에 미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당선이후 발표하는 작품이 모두 당선작의 수준을 뛰어 넘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선입감 때문이 아닐까요?
김=누구든지 「신춘문예」에 응모하려는 사람은 이것이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비장의 소재를 쓰기 때문에 당선 후 그러한 수준의 소재가 계속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겠지요. 또 정비석씨 같은 분은 「신춘문예」당선작인 『성황당』이 아직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고요. 그러나 이 문제는 작가자신의 문제겠지요.
오=제도상으로는 그때와 지금이 얼마나 다릅니까?
김=우선 당선작 고료도 그 당시 소설이 50원, 시가 5원이었었는데 당시의 1원을 지금 1천원 정도로 계산한다면 원고료도 3, 4배 오른 셈이지요. 시는 훨씬 많아진 셈이고요. 더욱이 당선작가를 성장시키려는 노력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다만 예심과 본심을 더욱 철저히 하여 당선작을 능가하는 작품이 탈락되는 것은 막아야겠지요. 또 모집기간을 좀 더 늘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그래요. 예선통과도 안됐던 작품이 다음해 당선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마감이 늦은 「신춘문예」에 더욱 많은 작품이 쏠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작품이 다른데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그중 한 작품을 탈락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신문사의 사정이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내 경우도 첫 당선이후는 익명으로 응모해서 당선했는데 그 때문에 최인욱씨가 피해를 본 일이 있지요.
38년엔가 「조선」신춘문예에서 김영수씨의 『소복』과 최씨의 『월하취적도』가 당선을 겨뤘었는데 최씨의 글씨라든가 작품세계가 나와 비슷해서 혹 김동리 것이 아니냐는 이유 때문에 실격 당했지요. 나중에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그 작품도 빚을 볼 수가 있었지만요.
오=그런데 역량 있는 사람인데도 「신춘문예」에 여러 번 응모했다가 낙선하고 나서 문단「데뷔」를 아예 포기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대체로 「신춘문예」에 대한 어떤 선입감, 즉 「신춘문예」에는 그 나름의 어떤「스타일」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가봐요. 실제로 지난해 당선작의 소재라든가 흐름과 유사한 작품들이 많이 응모해오고 있다고 하거든요.
김=「신춘문예」에 응모하는데 있어서 너무 불안을 느낀다든가 도박하는 심리를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요.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글씨를 알아보기 쉽게 쓴다든가 맞춤법에 유의한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자세에서 꼭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창작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오=김 선생님께서도 시와 소설에서 당선하셨고 저도 그랬는데 한 사람이 여러 부문에 응모하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한가지에 전념하는 것도 좋겠지만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역량이 있고 그 역량이 분산되지만 않는다면 여러 부문을 함께 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그거야 어쨌든 「신춘문예」를 통해 보다 참신하고 보다 능력 있는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어 앞으로의 우리 문학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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