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 이민 입국제한 외치는 영 하원의 이단아「파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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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 특파원】「런던」에도 낙서장이가 꽤 있다. 지하철정류장 담벼락·선술집·변소 등에 별의별 표현들이 소리 없는 소리를 지른다. 요새 자주 나오는 꽤 「인기」있는 게 하나 있다.「Enoch Is Right!」(「이노크」가 옳다)…. 거기에는 흔히 이런 주석이 붙는다.「Blacks Out!」(검둥이들아, 꺼져라).
「이노크」는 보수당 하원의원 「파웰」의 이름이다.「파웰」의원자신은 편지 속에까지 이름이 오르게끔 된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겨우『검둥아, 꺼져라』식의 약간은 똘만이급의 구호를 물고 다니는걸 탐탁히 여길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는 정계에 투신하기 전까지 희랍 고전문학을 강의하던 존경스런 교수님이었고 한 때 보수당 재야내각의 국방상 자리까지 지냈다.
자신이 좋아하건 말건, 요즘 이곳 사회계층 상하를 털어 사랑방 정담엔 으레 감초같이 붙어 나오는 「문제의 인물」이 바로「이노크·파웰」이다.
또「이노크」이름이 나오면 검둥이, 검둥이 얘기가 나오면「이노크」이름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의 이름이 그렇게 알려지게 된 것부터가 바로 이 인종문제 덕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색이민들이 쏟아져도 들어와 그 수효가 늘어가는 현상을 보고만 있어봐라. 언젠가는 이 나라 강물이 붉은 피로 물들 날이 올 것이다.』몇년 전 이런 어마어마한 선언으로 각광을 차지하기 시작한「파웰」의원은 인종문제에 관한 음산한 논쟁의 불쏘시개 노릇을 해왔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벌써 영국엔 너무나 많은 유색인종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당장 유색이민들의 입국을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유색이민이란 전 영령서인도와 「아프리카」계의 흑인들과 소위 「아시아」인들을 말한다. 그들 중, 특히 인종문제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아시아」인이란 영국 식민지였고 지금은 영 연방권에 들어있는 인도「파키스탄」인들. 독립 후에도 출입국관리 등에서 준 내국인 대우를 받아온 이들은 보다 나은 생활을 찾아 비교적 손쉽게 영국본토로 이민, 정착해와 전후 본토인 해외이민의 역이민 현상을 빚어낸 셈이다.
지금 영국 안에 살고 있는 유색이민수는 약1백만 명. 대부분이 사회저변에서 가난하게 살고있다. 그들이 총인구(5천5백만)에서 차지하는 몫이란 미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몇 가지 요인들은 이곳의 인종문제를 분수없이 돋보이게 하고있다. 그 하나가 유색이민들의 집단거주이다. 구직취업의 필요성은 그들을 도시나 공업지대에 살게 함으로써 지역적으로 거대한 흑색「게토」를 형성케 하고있다.
이런 격리현상이 그들의 이질성을 조장·강조·확대케 하고, 그것이 자칫 이질에 대한 동물적 경계나 적대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기 산업사회의 유·무형의 권태·불만의 덧없는 발산구가 인종 일발에 쓸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런던」부두에서 현역·실업하역부들이『「이노크」가 옳다』는 구호를 외치며 한바탕 「데모」사태를 벌인 것은 그런 음산한 가능성을 비친 하나의 사례로서 「매스컴」의 주목을 끌었었다. 한「선동정치가」로서의 「이노크·파웰」의원에 대한 관심이 주목을 끄는 까닭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속칭『길거리 중생의 영웅』으로서의 각광을 받게된 처지이긴 해도 체제안 정계 속에서의「파웰」의 위치는 화려하지 못한 이단자에 지나지 못한다. 적어도 공식상, 또는 공석상, 반대당인 노동당에서는 물론, 자기 소속당인 보수당 안에서도 그를 두둔해 나서는 사람은 없다.
「공석상」「눈에 띌 만큼」이 못되는 까닭은 누구보다 「파웰」의원 입을 잠깐 빌리는 게 좋다.
『그러나』라고 「파웰」의원은 언성을 높여 말한다. 『마음속 깊이엔 당신들도「이노크」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정말 그럴까? 정말, 소위 조용한 다수파로서의 거리의 중생들은 「이노크」가 옳다』고 의치고 있는 것일까. 양식을 대변한다는「매스컴」대답은 『천만에!』의 『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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