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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방공식별구역 확대 불가피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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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지난 11월 23일 중국이 동중국해 상공에 일방적으로 선포한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은 동아시아 안보환경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방공식별구역(ADIZ)은 영공이 아니며 국제법상 영공 관할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안보상 군용항공기 식별을 위해 특정 국가가 임의로 설정할 수 있으며 구역을 비행하는 항공기에 대해 무력 대응할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 긴장의 소지를 안고 있다. 중국은 한국·일본·대만 등으로 둘러싸인 동중국해 상공의 대부분을 자신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켰다. 특히 일본과 분쟁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상공은 물론 일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이어도 상공까지 포함됐다.

 이와 관련, 박근혜정부는 6·25전쟁 중 미국 태평양공군에 의해 설정됐던 KADIZ를 62년 만에 조정하였다. 한국이 현상(status quo)을 깨고 KADIZ를 조정한 것은 현재의 동북아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판단된다. 주변국 공히 현상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상황에서 한국만이 갈라파고스의 고도처럼 현상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고 본다. 해양주권과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기존 KADIZ에 포함되지 않아 논란을 빚어왔던 마라도와 홍도 남방의 영공, 그리고 우리가 관할하는 이어도 상공을 새로운 KADIZ에 포함시켰다.

 이번 한국의 KADIZ 조정은 사안의 민감성에 비춰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입각, 매우 신중하게 절차를 밟는 모양새를 취했다. 우선, KADIZ를 조정하면서 일방적 선포가 아닌 관련국들에 충분한 사전 설명을 제공하고 이해를 구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방한에 즈음해 미국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를 통해 조정안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중국의 CADIZ 선포는 자국 영공에 진입하는 항공기뿐만 아니라 단순히 식별구역을 통과하는 모든 항공기에도 ‘무장역량에 의한 방어적 긴급조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 통상의 방공식별구역 관련 관행을 넘어선다. 반면 한국은 기존 국제법상 공해상 항공자유의 원칙을 최대한 존중하여 영공에 진입하려는 항공기가 아니면 그러한 조치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국제항공질서와 국제규범에 부합한 조치다.

 새로 조정된 KADIZ는 주변국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ADIZ 본연의 의도에 맞도록 주권국가로서의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영역만을 담고 있다. 한·중·일의 이해가 교차하는 남방지역과 관련, 새로운 KADIZ는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인접국과 중첩되지 않는 인천비행정보구역(FIR)과 일치되도록 조정했다. 마라도와 홍도의 영공, 그리고 이어도 수역 상공이 KADIZ 내에 위치한다는 점도 고려됐다. 중국과 일본 모두 이번 KADIZ 조정 내용을 보면 국제규범에 부합하고 각각의 영공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항공운항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에 관해 관련국들과의 협의를 제안하고 있다.

 62년 만의 KADIZ 조정이 동북아 영토분쟁의 악순환을 끊고 동북아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ADIZ는 영공이 아니며 안보 차원에서 군용항공기 식별을 위한 국가의 임의적 설정이라는 점을 역내 국가들은 인식해야 한다. 국제법상의 공해상 항공자유의 원칙이 존중되고 역내 안전하고 자유로운 항공운항을 보장하는 것이 이 지역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이익이자 책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