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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제29화>조선어학회 사건(1)|정인승<제자 정인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글사전 편찬>
1942년10월1일.
옷깃을 쌀쌀한 바람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희뿌연 한 첫 새벽길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사전편찬 일을 한 피로를 싸늘한 새벽바람에 씻어가며 혜화동 성벽 밑 막바지에 있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조선어사전 편찬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사전원고를 하나하나 써 가면서 회원들이 보낸 원고를 재정리하다 보면 밤을 새우게 되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서울 종로구 화동129번지 경기중학 건물앞쪽 담 밑에 있는 2층 건물 2층에 손바닥만한 「조선어학회」란 간판을 걸고 사전 편찬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9월 그믐날도 어휘를 낱말별로 고르고 원고를 정리하다 또 밤을 새우고 말았다.
「조선어학회」2층 낡은 집은 아래층에서 이극로가 살림을 하고 있었으며 2층에는 방2개가 있어 「조선어학회」사무실 겸 사전편찬실로 쓰고 있었다.
이극노·권승욱·나 이렇게 셋이서 어젯밤도 밤일을 하고 첫 새벽에 집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너무 방대한 우리말 어휘정리의 고달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사전 편찬 일이 손 부족으로 제대로 진행이 안되어 가슴은 초조하기만 했다.
일제는 이미 1940년2월에 창씨 제도를 시행, 우리 나라 사람에게서 성까지 빼앗아 낯선 일본식 성으로 바꾸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해 8월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고 우리말로 발행되던 잡지들도 점점 폐간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국으로 보아 일제는 우리 나라 땅에서 우리말을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악귀 같은 탄압정책을 쓸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보였다.
언제 어디서 우리 사전편찬의 일에도 그 일제의 탄압마수가 뻗쳐 올는지 모르는 불안마저 들었다.
그러나 사전 편찬 일은 2∼3명이 밤을 새워 일을 해도 워낙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 진도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사전 편찬 일은 1942년 3월에 대동출판사의 협력을 얻어 원고일부를 인쇄에 부쳤고 언제 어떻게 또 원고가 없어질지 몰라 원고를 따로 또 한벌 만들어 비밀히 간직케 했다.
그러나 원고의 일부가 인쇄에 붙여졌다고 하지만 원고 정리하는 일손이 모자라 이극로와 권승욱 그리고 나는 화도「조선어학회」 2층 사무실에서 번번이 밤을 새워야만 했다.
같이 밤을 새우며 원고 정리를 하던 정태진이 지난 9월5일 함경도 홍원 경찰서에서 날아온 한 장의 증인소환장을 받고 내려간지 한 달이 가까이돼도 아무런 소식 하나 없는 것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가뜩이나 손이 모자라는 판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홀홀히 홍원으로 떠나간 정태진이 소식 하나 없어 이극노와 나는 『그 사람 정신 있는 사람이냐?』고 짜증까지 내고있는 판이었다.
정태진은 그날 소환장을 받은 즉시 『하여간 오라고하니 뭐 죄지은 것도 없으니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 같이 일하던 일동은 『빨리 다녀오는 것이 낫겠다』고 하여 별 염려 없이 내려가고만 것이었다.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혜화동「로터리」를 돌아 성벽을 향해가며 나는 피로도 잊고 머리 속에서는 정리하다만 낱말들이 하나 하나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원고 정리를 빨리하여 인쇄소에 또 넘겨주어야 할텐데….』 이극노와 권승욱 그리고 나는 오늘 새벽에도 일손을 놓고 잘 진전되지 않는 편찬 일을 다시 서두를 것을 가슴속에 되새겼었다.
정태진이 오늘이라도 빨리 돌아오면 다시 활기를 찾아 일이 눈에 띄게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나의 발걸음은 어느덧 집 앞 막바지 언덕을 올라 대문 앞에 닿았다. 그러나 이제 막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골목길에 우리 집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새벽이면 돌아오는 조용한 골목길 그 조용하고 아늑해야만 할 골목길에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일은 이상한 두려움을 한순간에 나의 가슴에 안겨 주었다.
나는 성큼 대문을 들어서며 주위를 들러 보았다.
내가 서재 겸 살림방으로 쓰고 있는 안방 문도 또한 열려 있었다.
문을 열어놓은 안방 안에는 낮 모르는 양복장이 두 사람이 반듯이 앉아 있었다. <계속>

<필자약력>
한글학자. 76세. 1897년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서 출생. 1925년 연희전문문과본과 졸업.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원. 1936년 조선어 학회 사전편찬시작.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검. 2년 실형언도. 함흥 형무소에서 복역 중 8·15해방으로 출옥. 1951년 전북대학교총장. 중앙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수여. 현재 한글학회이사. 건국대, 단국대, 명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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