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론과 현실경제-「로빈슨」교수의 「경제학의 제2위기론」이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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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학계의 거장 「로빈슨」교수의 『경제학의 제2위기론』(본보 10월22·24·25일자 보도)은 미국 경제학회 연례논문집의 권두에 수록되는 「Richard T·Ely기념논문」이었으며 경제학자의 자아비판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이다.
경제학은 현실 경제문제의 해결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데서 그 학문적 가치가 인정되는 실용과학이므로 「로빈슨」교수는 현행 경제이론이 해답을 주지 못 하고 있는 현실문제가 무엇인가를 지적함으로서 후배경제학도들의 학문적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논문은 또한 경제의 지속적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하는 우려나라의 경우에 경제이론이 담당해야할 역할과 그 한계성을 생각하여 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1 위기의 극복>
「로빈슨」교수는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때 종래의 전통적 경제이론이 속수무책이었던 당시를 「경제학의 제1위기」라고 부르고 있다.
즉 당시의 고전학파이론은 자유경쟁을 원리로 하는 시장경제가 자원의 합리적 배분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경제체제이고 「세이」법칙에 따라 경제대원은 항상 완전고용수준에 놓인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유방임주의(Laisser Faire)가 최상의 것으로 받아졌다.
그러나 1920년대 말에 세계를 휩쓸었던 공황은 이러한 고전학파의 안역한 경제관과 추상적인 이론체계를 실증적으로 부정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경제학은 「제1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서 현실세계에 뿌리를 박고 경제현실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한 「케인즈」의 유명한 유효수요 이론이 등장함으로써 경제학의 학문적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다.
저축과 투자의 불일치로써 생산수준의 변동을 설명하는 「케인즈」이론은 자원의 완전고용을 위하여 정부의 재정 및 금융정책을 통한 유효수요 창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였다. 1930연대의 「뉴딜」정책에 의한 불황극복과 1940년대의 전시경제, 그리고 전후의 군비증강에 의한 경제호황은 결과적으로 유효수요 이론의 정당성을 실증한 셈이다.

<제2위기의 도래>
그런데 「케인즈」이론에 입각한 유효수요의 조절에 의해 경제가 일단 완전고용수준에 도착하게되면 자원의 배분과 생산방식은 고전학파(혹은 신고전학파) 이론에 따라 자유경쟁원리에 따른 시장기구가 자동적으로 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이러한 「케인즈」적 거시이론과 신고전학파적 철시이론의 결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또한 해결할 수 없는 경제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즉 경제는 성장을 하는데 빈부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자유경부명제이면서도 독과점의 불완전 경쟁도는 더욱 우심하여지며 사적가용과 사회비용간의 예외적 불일치로서 설명되는 사기업의 공해문제는 이미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현상들을 현대경제이론은 간과하고 있다고 「로번슨」교수는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정립이나 해결방안의 착시 없는 경제이론은 지적유희와 학문적 자치에 불과하다고 보고 현대경제학은 이러한 문제들을 수수방관만 함으로써 「제2의 위기」에 놓여있다는 주장이다.

<실용학문으로서의 경제학>
산업공해·도시빈곤문제·소비자 주권의 퇴영화·산업과 군비확충과의 제도적 밀착 등 현대산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현대경제이론의 유용도가 「로빈슨」교수와 같이 경제학의 「위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무력한 것인지 혹은 그것이 다소 과잉표현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성이론이 이러한 새로운 현실문제를 다루기에는 불완전한 짓임은 사실인 것 같다.
경제학의 새로운 분야로서 도시경제학(Urban Economics)이 발전되고 있다든지 「갤브레이드」의 『신 산업국가론』 같은 이단적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음은 기성경제이론의 한계성에 대한 단적인 도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로빈슨」교수의 소론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어떠한 것들이 현대산업사회의 문제점들인가 보다는 경제학의 건전도 판단을 경제이론의 현실문제에 대한 진단 및 처방능력에 두고 있다는 점이고 경제학의 학문적 가치는 현실문제의 해결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의 실천적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로빈슨」교수가 제기한 문제들은 다분히 선진공업제국들의 것이고 우리의 경우에는 그 이전의 문제, 즉 어떻게 하여 우리의 경제가 고도성장의 궤도에 효율적으로 진입하고 안정적 운행을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파이」자체를 마찰 없이 키워 나가느냐가 당면문제이므로 한국경제학의 유용도는 이러한 기준에서 평가되어야 될 것이다.

<이론과 실제>
그런데 경제이론의 유용도가 현실문제의 해결능력에 있다고 해서 이론경제학은 공리공론이고 응용경제학만이 실용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조직의 분업화 현상에 따라 경제학은 기능면에서도 분업화가 되고 있다. 경제분석의 도구제작자(tool-maker)로서의 경제이론가와 도구이론자(tool-user)로서의 경제실무자간의 상호의존과 협업은 경제학과 경제학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수식을 사용하여 수리경제학자가 만든 경제모형이나 계량경제학자가 창안한 계량도구 등을 현실경제의 분석에 참고하고 이용하고 있음은 좋은 예이다. 문제는 현실경제의 분석에 얼마나 유용한 이론적 도구인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이론」의 유용도를 과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는데 이것도 「이론」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 하는데서 오는 오해이다.
원래 「이론」이란 복잡한 현실경제의 요행상태를 단순화시켜 설명하고 무식한 경제요인간의 상호관계성을 몇 개의 중요변수로 축소시켜 만든 모형인 것인데 이 모형의 유용도는 그 실체인 현실경제의 본질파악과 예측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있다고 보겠다.
이런 의미에서의 「이론」은 「실제」와 완전일치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며 다만 경제이론에서 도출된 어떤 특정가설(hypothesis)은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고 비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흔히 한국경제의 현실분석과 처방에 있어서 교과서적 이론의 위험과 직수입된 서구이론의 기계적 적용을 탓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이론」(theory)과 「가설」(hypothesis)과를 구별하지 않는데서 오는 오류이고 이를 혼동하는데서 오는 기우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교과서적 이론이 현상경제에 그대로 적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경제학자가 개인적 편견과 객관적 분석과를 혼합한데서 도출되는 주관적 정책처방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경제학의 학문적 가치를 현실문제의 해결능력에서 찾는 「로빈슨」교사의 경제학위이론은 한국적인 입장에서도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안승철<경박·한은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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