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의 성공은 '가난=악' 이란 상류층 편견 깼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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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지난번 『집없는 아이』의 레미가 잠시 런던 빈민가에 살았던 이야기를 했다. 그보다 당시 런던 빈민가의 모습을 더 잘 담아낸 작품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다.

주인공 올리버는 빈민 구제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올리버를 낳자마자 사망했다. 고아원에서 자라던 중 그는 배식시간에 죽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가 매를 맞고 쫓겨나 장의사 집에 맡겨진다. 도망쳐 런던으로 간 올리버는 갈 곳이 없어 도둑인 페긴 일당과 어울리게 된다. 누명을 쓰고 체포되기도 하고 총상을 입기도 하지만 끝내 올리버는 그를 도둑으로 만들려는 악인들에게 가담하지 않고 착한 마음을 유지한다. 페긴 일당이 도둑질하러 간 집의 주인인 브라운로우는 이런 올리버의 성품에 감동받아 그를 돕게 된다. 결국 원래 귀족의 아들이었던 신분이 밝혀지고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하여 올리버는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아동용 축약본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올리버 트위스트』는 원래 동화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한 고아 소년의 삶을 통해 19세기 전반기 영국의 도시 빈민 문제와 아동 노동,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사회고발 소설이다. 작가 역시 교육을 받지 못하고 12세 때부터 공장에 다녀 이 시기 도시 빈민과 아동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현실적 배경 묘사에 비해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유산을 상속하여 부자가 되는 결말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길거리를 떠돌다 범죄조직에 이용되는 아이들이 이렇게 될 확률은 거의 없지 않은가. 자신의 경험으로 예리한 사회 비판정신을 갖게 된 작가가 왜 소설의 결말은 이렇게 썼을까?

가난한 아이들이 부자 친부모나 양부모를 만나 행복해지는 결말은 당시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서구사회에는 우리와 다른 유산 상속문화가 있었기에 뜻밖에 유산을 상속하고 부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결말이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만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가난한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 가기는커녕 글자를 읽을 줄도 몰랐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1838년, 영국의 문맹률은 40%가 넘었다. 무상초등교육법은 1870년에야 영국의회를 통과한다. 그렇다면 이런 결말은 실제로 소설책을 사서 읽는, 먹고살 만한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고 봐야 한다.

소설에서 올리버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그를 범죄자로 만들려는 악당들의 시도는 늘 실패한다. 올리버는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는 선량한 성품을 지녔는데, 알고 보니 귀족의 아들이었다. 이는 당시 독자들에게 가난하다고 해서 다 범죄에 빠지고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당연한 말이라고? 아니다. 그 시절 상류계급 사람들은 가난은 곧 악이라고, 가난한 자는 다 범죄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난해도 훌륭한 성품을 지닌 아이가 있는데 알고 보면 혈통도 훌륭하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을 다시 보게 해 주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기독교 문명권인 서구 사회에는 ‘가난하고 지친 나그네를 잘 대접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천사였다’는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성경에도 있는 이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톨스토이가 쓴 동화도 있다. 그렇다, ‘알고 보니 부잣집 아들’이란 이야기는 ‘알고 보니 천사’란 전설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많이 갖고 힘센 사람들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현재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올리버 트위스트』의 결말이 비현실적인 해피엔딩만은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