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황군 패잔병 3천여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동경 UPI동양】「필리핀」의「루방」도 밀림 속 어딘가에 구 일본군의「오노다·히로오」중위는 수풀 속이나 동굴 속에서 아직도 숨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아마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오노다」와 그의 부하「고즈까·킨시찌」1등 병은 지난달 말에 현지 순찰경찰에 발각되어「고즈까」만 사살되고「오노다」는 도주했고 그 후 수색 전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27년 전에 2차대전이 끝난 후 모습을 나타낸 일군 패잔병으로서는 이들이 마지막이다.
일본정부는「아시아」전역에서 이런 변지에 아직 숨어있을 일본군 패잔병들의 수를 3천7백명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아직도 은신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로서는 두려움이나 공포 또는 전쟁이 끝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등의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인가운데 아마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중세기 때부터 2차 대전 때까지 일본에서 전해내려 온 이른바『무사도』정신 때문일 것이다.
구 일본군인들은 이 정신으로 훈련을 받고 교육을 받아왔으며 투항이나 항복이야말로 최대의 죄악이라는 정신을 주입 받아 온 것이다.
즉 항복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졌을 때는 죽음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처신이 된다고 이들은 훈련되어 온 것이다.
이른바 이러한『전진 훈』의 핵심에는 일본의 천황이 있다.
즉 군인들은 일본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천황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숨도 기꺼이 바쳐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시대가 바뀌고 미군의 일본점령을 통해 천황의 신격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격하되어서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아직도 은신하고 있는 군인들로서는 이러한 시대의 변천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모양으로 그들은『무사도』를 아직도 철저히 지키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금년 초「괌」도에서 나타난「요꼬이·쇼오이찌」는 지금의 현대일본의 생활방식에 적응하고 있는데 그「요꼬이」씨도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전쟁중이나 전쟁 후에도 목숨을 끊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오노다」중위는「요꼬이」와는 군인정신이 상당히 다른 인간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오노다」중위의 옛 상관이었던「다니구찌·요시미」전 소좌는「오노다」를 포함해서 1944년에「필리핀」에 파견된 군인들은 미군을 정탐하는 정보수집의 명령까지 받고 있었으며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되든 간에 그들의 이 명령에 수행해야 한다는 엄명을 받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오노다」의 부하인「고즈까」일등병의 시체를「마닐라」에서 검시할 때 의사들은「고즈까」일등병이 27년간을 밀림에서 숨어살면서도 머리를 얌전히 빗고 손톱까지 가지런히 깎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로 미루어보아「오노다」와「고즈까」는 27년을 밀림에서 살면서도 일본군대에서 배웠던 대로 기율을 지키며 살아온 것으로 짐작될 수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