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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200조 펀드 시대] 上. 장기투자 활발…펀드 르네상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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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기도 분당에 사는 가정주부 안모(52)씨는 올 초부터 매달 30만원씩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안씨는 '바이코리아' 열풍이 불던 6년 전 "몇달 안에 수십%의 수익률도 낼 수 있다"는 이웃의 말을 믿고 스팟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그는 "이후 여유 자금은 모두 은행에만 맡겼지만, 금리가 너무 낮아져 마음을 바꿨다"며 "이번엔 수익률이 은행보다 높기를 기대할 뿐 큰 욕심은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씨 권유로 대학생인 그의 딸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의 일부를 다달이 적립식 펀드에 넣고 있다.

개인투자자 사이에 '펀드'열풍이 다시 불면서 간접투자 시장의 규모가 2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5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3월 30일 현재 펀드 수탁액은 지난해 말보다 30조원 불어난 197조원을 기록했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달 중 200조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1999년'바이코리아'열풍에 힘입어 262조원까지 치솟았다가 이듬해 주가 급락과 함께 137조원까지 줄어든 지 5년 만의 일이다. 푸르덴셜자산운용의 구안 옹 사장은 "현재 한국의 자산운용업은 새벽이다. 이제 곧 아침을 맞아 더 활기찬 발전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초저금리 맞아 자금 '밀물'=펀드 200조원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초저금리 기조 덕분이다. 금리가 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마이너스 금리'가 현실화되자 은행에 묶였던 자금이 대거 이탈했다. 이런 움직임을 간파한 투신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적립식 펀드' 마케팅을 강화했다. 때마침 주식 시장이 상승세를 타면서 '저축에서 투자로' 향한 자금 이동은 가속도가 붙었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장기 재정 설계의 필요성 대두 ▶'투자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 확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른 다양한 상품 등장 등도 펀드 시장의 확대에 일조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 기업연금제가 도입되고 펀드 직판 등 판매 채널이 확대되면 이 같은 추세가 향후 몇년 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에반 해일 사장은 " 5년 후엔 펀드 시장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커진 400조원대가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 '바이코리아'때와는 달라=많은 개인투자자는 '바이코리아'의 악몽을 떠올리며 최근 펀드 시장의 활황세를 반신반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성장세가 거품처럼 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펀드 시장과 투자자 모두가 좀 더 성숙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칸서스자산운용의 김영재 회장은 "99년 바이코리아 열풍 때엔 코스닥 급등에 기댄 맹목적이고 투기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요즘은 기업들의 수익성과 경영 투명성이 크게 좋아졌고, 운용사도 경쟁력을 갖췄으며, 적립식 등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증시가 지루한 조정을 거치는 와중에도 주식형 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꾸준했다. 투자자들이 시황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에 대한 교육 확대와 자산운용업계의 경쟁력 강화 등 본격적인 간접투자 시대를 정착시키기 위한 과제도 만만치 않다.

표재용.김영훈.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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