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릉 비밀 캤다, 전기공학자의 8년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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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진락 교수가 지난 여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에 있는 신라 44대 전(傳) 민애왕릉을 탐사하고 있다.
이진락

신라 왕릉은 미스터리다.

 신라를 건국한 혁거세부터 마지막 경순왕까지 56왕이 나왔지만 사후 능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무열왕릉과 흥덕왕릉만이 명문이 발견돼 예외로 인정되고 있다. 경주에서 만나는 왕릉의 표지판은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기록 등으로 후대가 추정했을 뿐이다. 비석 등으로 왕릉의 주인이 대부분 밝혀진 중국·일본과 달리 한국 고고학계가 풀어야 할 최대 과제다.

 특히 6세기 이후 통일신라 시기에 등장한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은 후손들이 관리하면서 발굴 등을 통한 연구는 아예 봉쇄된 상태다. 묘제 등 신라 왕릉의 주변 연구도 덩달아 답보 상태다.

 전기공학자가 이런 분위기에 새로 돌파구를 뚫었다. 신라 왕릉의 두 가지 비밀을 푼 것이다. 주인공은 위덕대 에너지전기공학부 이진락(50·전기공학박사) 교수.

 경주가 고향으로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이 교수는 신라 왕릉의 호기심에 이끌려 고고학을 다시 공부한 뒤 박사학위 논문을 써서 최근 심사를 통과했다. 연구에 몰입한 지 8년 만이다. 이 교수는 전기탐사 기법으로 왕릉급 고분 25기의 내부 구조를 연구해 발굴하지 않고 묘도(墓道)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전기공학과 고고학의 융합이다. 횡혈식석실분은 피장자를 묻은 뒤 왕비 등이 죽으면 다시 문을 열고 묻게 된다. 그때 능 안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묘도다.

 묘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변 지형지세를 고려한 묘향(墓向)과 두향(頭向·시신의 머리방향), 묘도향(墓道向)을 중시한다. 묘향은 상석의 위치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묘도향과 두향은 발굴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묘도향을 알면 묘제를 알고 신라 왕릉의 비밀은 한 겹 벗겨지게 된다.

 이 교수는 “봉분을 36개 측정방위로 설계하고 전류를 투과시켜 묘도를 찾아냈다”며 “첨단 장비를 동원하면 왕릉 내부의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는 8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경주시 사적공원사무소의 허가를 얻어 이뤄졌다. 실험한 왕릉은 원성왕릉(괘릉)과 흥덕왕릉·헌덕왕릉·경덕왕릉·김유신묘·신문왕릉·헌강왕릉 등이다. 이 교수는 연구를 통해 신라 왕릉의 묘도는 남동쪽과 남서쪽 두 부류가 있으며 정남쪽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냈다. 또 성덕왕릉·원성왕릉·경덕왕릉·흥덕왕릉 등 제단이 있는 곳은 2차 장례를 고려해 묘도와 제단의 위치가 서로 달랐다.

 그는 묘도와 함께 또 하나의 비밀도 풀었다. 한 지역에 몇 개의 능이 모여 있는 경우 조성 시기의 선후를 밝혀낸 것. 봉분 토양에 있는 고유한 전기적 특성 검출을 통해서다. 이 교수는 3개 왕릉이 이웃한 사적 제219호 배리삼릉(아달라왕릉·신덕왕릉·경명왕릉)의 경우, 가운데 위치한 신덕왕릉이 양쪽 왕릉과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서악동 고분 1, 2, 3, 4호분과 무열왕릉의 조성 시기도 새로 규명했다.

경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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