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서 맴도는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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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민은행 아현동지점 예금주 피랍사건은 9일 「시한부 수사」의 「데드라인」을 하루 앞두고 유기차량 수사에 다시 쏠렸다. 난데없이 부산물로 걸려든 절도전과4범 김지홍(25)은 자질구레한 절도혐의만 자백한 채 예금주 피랍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한때 『96%의 혐의가 있다』고 긴장했던 경찰은 싱겁게 맥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9일부터는 용의차량이 버려졌던 서울 영등포구 봉천동과 신림동일대에 「주머니꼴」로 차량절도 전과범을 찾기 위한 정면수색 포위망을 폈다. 경찰이 무엇보다 현 단계에서 수사의 총력을 이 지점에 투입하고 있는 것은 차량은닉장소를 발견하는 것이 사건해결의 지름길이기 때문-. 경찰은 적어도 차량을 버린 범인이 유기지점에서 반경권 4km를 넘어서지 못한 곳에 숨어있는 것으로 거의 단정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로 ①범행차량이 버려진 지난4일 서울지방에는 상오 1시20분∼하오 6시12분 사이에 약 30분 간격으로 모두 9차례 비가 내려 유기장소 부근의 땅이 질척거렸는데도 차바퀴나 차체에 튀긴 흙이 그리 많지 않다 ②오른편 앞과 뒷문의 유리창이 모두 깨어져 있었으나 창문을 통해 「시트」위로 빗물이 떨어진 흔적이 없다 ③당시 검문검색이 강화돼 있었기 때문에 발각의 위험을 안으면서까지 멀리 차를 버리지 못한다 ④범인은 유기장소인 이병철씨(35·영등포구 봉천4동610의 4) 집 주변의 지리사정을 잘 안다는 점 등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배중인 범인 모두가 반드시 이 일대에 숨어있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차를 버린 범인은 이정수씨(38)를 납치한 2인조 외에 분배약속에 따라 범인들의 부탁을 받고 운전만 해주는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납치범보다 차량 운전범을 검거하는게 사건해결의 첩경이 된다. 범행차를 조사한 수사관들은 깨진 유리가 그대로 있고, 먼지 등 노숙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들은 범행 후 차를 주택·개인차고·창고 등 지붕이 있는 일정한 장소에 숨겨두고 있다가 경찰수사망이 압축되자 강박감에 쫓겨 차를 내다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경찰은 봉천4동 제3현장을 중심으로 봉천동·신림동 일대로 수사망을 나날이 압축, 차량은닉장소와 범인을 쫓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는 현 단계로서 다른 수사방법의 묘안이 없다.
그동안 경찰은 영등포·노량진일대 세차장 50개소·주차장 32개소·정비공장 11개소·기타 은닉용의 장소 14개소를 뒤졌으나 단서를 잡지 못했었다.
지난 8일부터 주택지 정밀수사에 나선 수사본부는 차를 버린 범인은 적어도 신림동·봉천동 일대에 차를 세워둘 만한 장소를 갖고 있는 전직 자가용이나 영업용 운전사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고 경찰과 방범대원·통·반장 등 1만여명을 동원, 물셀 틈 없는 수색을 펴고 있다. 경찰은 봉천동·신림동 등 유기 장소에서 반경 4km이내에 거주하는 주민 20여만명 가운데 2천명이상의 전직 및 현직 운전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파악, 이들의 「리스트」를 작성중이다.
경찰은 상은 용산지점앞 김영근씨 피랍사건이 발생한 지난 7월 27일 이전에 도난 당한 차량 3백70대 가운데 이제까지 회수되지 않고 있는 서울 자2-528, 3-234. 1-5078, 서울 영2-1966, 2-3625, 1-9198등 6대의 검은색 「코로나」 및 「코로나」를 집중수사하고 있다.
한편 피랍된 이정수씨의 행방을 찾고있는 경찰은 범행차량의 감정결과와 총성이 울린 제2현장의 상황으로 미루어 이씨가 제1현장에서 약2km 떨어진 마포구 공덕동278 김광춘씨 (여·52) 담배가게 앞에서 3번째 총성이 울린 때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범인들은 죽은 이씨를 그대로 싣고 범행장소로 예정했을지도 모를 제2현장∼서울대교∼5·16광장∼영등포 구청앞∼신림동∼관악산 쪽으로 달아나다 관악산일대 야산에 시체를 유기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경찰의 추리다.
그러나 이「코스」는 5·16광장·영등포 일대 등 교통이 혼잡하고 차량통행이 많은 곳을 상당한 시간동안 달려야 하고 발견되기 쉽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제1범행 때 김영근씨를 광주로 데려다 묶어 놓은 전례로 본다면 범인들은 제2현장∼서울대교「인터체인지」∼강변4, 5, 6로∼광주 대단지 등 강남「코스」를 이용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생각밖에 이정수씨의 반항으로 이씨가 죽자 다급해진 범인 심리로는 당초 예정을 바꾸어 두 갈래 오른쪽 길로 급히 꺾을 수 있는 서강대 앞∼신촌「로터리」∼연대입구∼연희동∼수색∼경기도 고양군 등 「택강」우범지대에 시체를 유기 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가능성에 대해 경찰의 수사는 허술해 있다.
범행차량의 기름「탱크」에 남은 휘발유는 발견 당시 4「갤런」.
범행할 때 「탱크」(11갤런)에 기름을 가득 채운 것으로 추정한다면 그동안 7「갤런」을 소비, 약 2백10km를 운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은 이씨를 버리기 위해 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진 지방에까지 갔을 가능성도 짙어 지금까지 서울부근에만 집중했던 이씨의 신병수색은 훨씬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해야할 필요성도 있다. <김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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