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 숙청은 평양서 직접 지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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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동경=박동순 특파원】최근 조총련 내부에서 표면화한 조직 내분은 의장 한덕수와 제1부의장 김병식 간에 단순한 권력투쟁의 범위를 넘어 북한의 김일성이 직접 지시한 바에 따른 조총련 지도체제 개편 작업의 일환이기 때문에 개편지시의 발단이 된 김병식에 대해서는 격하, 지위 박탈 내지 평양 소환 등이 검토되고 있다는 정보를 권위 있는 일본의 정보기관이 입수, 정세분석에 착수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조총련 창설 20여년 이래 최대의 파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3일 정통한 일본 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조총련 부의장 이계백은 지난 6월 평양에 갔을 때 조총련 내부의 문젯점을 보고, 김일성으로부터 조총련 노선을 의장 한덕수 체제로 단일화하라는 교시(6·14교시)를 받아왔으며 따라서 이러한 교시를 김병식이 말단 조직에 전달치 않은 채 묵살, 노선 전환을 회피한 조치를 비난하면서 비롯된 한덕수의 김병식 거세 작전은 김일성의 간접적 양해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의 개편 지시를 받아낸 바 조총련이 문제삼은 김병식의 과오로서는 ①당의 지도이념을 일탈, 조직을 무시하고 독주했으며 ②김병식이 일본 안 공작에서 채용한 방법은 전체주의 노선과 수법을 벗어난 「우익적 수업」이고 ③반 김병식 계열을 기회주의자로 마구 낙인찍음으로써 반 조총련 세력을 길러 결과적으로 조직의 혼란을 가져왔으며 ④협아물산을 설립, 모처럼 거액의 공작금을 들여서 만든 조일 수출입 상사를 무력화하려 했다는 점등이 지적됐으며 ⑤여기에 김병식에 의해 「로보트」화한 의장 한덕수와 제2인자로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김병식 간에 권력 투쟁적 요소가 섞여든 것 같다고 일본의 관계기관은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는 비교적 평가 받고있는 김병식의 대일 선전 및 언론계 공작 활동도 북한 노동당과 조총련 내부에서 오히려 당의 노선을 위반한 내부조직에 혼란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 것 같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병식을 남북 적십자 회담 자문위원으로 참석케 한 북한의 조치도 사실은 ⓛ김을 평양에 소환, 당의 방향을 통고(지도) 하자는 것과 ②김의 일본에서의 비중을 이용, 정치적 목적의 출국 및 재 입국을 기정 사실화 하자는 포석이었으며 김병식으로서는 이 기회에 평양에 가서 자기 입장을 해명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북 적십자 서울회담까지 끝낸 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비서 겸 정치위원이며 당 조직 지도부장 김영주 권한 대행으로서 「랭킹」이 10위의 실력자인 김중린이 직접 담당한 평양서의 지도에서 김병식의 「교시」를 무시한 노선 전환 묵살 행위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와 병행해서 9월 14, 15일에 긴급 소집된 각 현 위원장 및 조직선전 부장 회의와 9월 20일에 열린 「학습회」에서 김병식을 비판하기에 이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병식 계열인 조총련 조직·선전부장과 관동지부 위원장이 이미 제거 당했고 앞으로 관련 산하조직에까지도 개편조치가 단행되면 조총련 조직 내분의 파문은 크게 번져가리 라는 전망이다.
특히 병약설이 있었던 한덕수는 병구를 무릅쓰고 반 김병식 투쟁을 앞장서 지휘하고 있으며 한이 쌓아 올린 ①조총련 조직을 일본 공산당에서 북한 노동당 산하로 합류시킨 용단 ② 한 때 어려웠던 북한에 밀 출입북하면서 벌여온 끈질긴 공작활동 실적과 ③조총련 조직 배후의 인망으로 봐서 일본의 관계 당국에 의해 동북대 출신이라는 학력마저 사칭했음(실제로는 청강생)이 확인된 김병식 쪽이 단순한 부의장으로 격하, 혹은 직위를 박탈당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평양에 소환, 유치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본 관계 전문가의 분석이다.
실제로 지금 조총련은 『지도자는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유일 사상을 강조하며 단일 지도체제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공작 월간」을 설정했으며 도청 장치설 등과 관련된 듯한 「보디·가드」가 전원 해임됐고 평양에서는 김을 3차 남북적 회담에도 자문위원으로 참석케 하여 그대로 평양에 유치할 가능성이 고려되고 있으며 김도 현재 참석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소식통은 이번 지도체제 개편 움직임을 통해 나타난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로서 지금까지 김일성만을 내세웠던 조총련의 「강습회」등에서 『당 조직지도부장 김영주의 지시노선에 위반 운운』하는 식으로 김영주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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