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에 총학 못 맡겨, 전과까지 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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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때 총학생회를 폭력조직에 장악당했던 지방 대학·전문대들이 총학생회장 선출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조폭이 입학한 뒤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당선돼서는 학생회비를 빼돌리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4일 경북 구미대에 따르면 이 학교는 지난 10월 총학생회장 투표제를 아예 없앴다. 대신 출마 후보자를 놓고 각 학과를 대표하는 대의원 학생들이 논의해 최종 후보를 총장에게 추천하도록 했다. 그러면 학교가 신원조회와 평판 검증을 해서는 총장이 임명하도록 제도를 고쳤다. 구미대 도수길 홍보팀장은 “투표를 하면 결과에 대해 학교가 개입하기 힘들다”며 “그래서 부적절한 인물에 대해 학교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임명제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2011년 조폭 조직원이 총학생회장이 돼 1억1000만원을 횡령했다가 올해 경찰에 적발됐다.

 충북 청원군 충청대는 2014년도 총학생회장 선거부터 후보 추천인 수를 40명에서 80명으로 늘리도록 했다. 또 추천인 서명 대신 반드시 도장을 받도록 했다. 서명은 위조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충청대 김정근 취업학생처장은 “선거 역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관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선 2011년 총학생회장이 됐던 조폭 조직원이 졸업앨범 제작과 행사 진행 같은 이권에 개입해 4000만원을 빼돌린 바 있다.

 강원대 삼척캠퍼스와 전남 광양보건대·순천제일대는 후보로 나설 때 ‘범죄경력증명서’를 꼭 내도록 규정을 바꿨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이 될 때 내는 ‘범죄 사실 없음’ 증명을 의무화한 것이다. 역시 2014년도 총학생회장 선거부터 적용한다. 광양보건대는 이에 더해 교수 추천서까지 받도록 했다. 이 대학들 역시 조폭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학생회비 등을 횡령했던 곳이다. 조폭들은 정원 확보에 시달리는 지방대에 입학해서는 상대 후보를 협박해 사퇴시켜 총학생회장이 된 뒤 학생회비 등 각종 자금을 떡 주무르듯 했다. 수년에 걸쳐 대를 물려 학생회장을 이어가면서 13억원을 빼돌렸다가 경찰에 검거된 조폭도 있다. <중앙일보 8월 20일자 10면

 총학생회장 선거 규정을 손질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조폭의 학생회 진출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폭 아닌 총학생회 간부들이 학생회비를 유용하는 일 등이 일어나서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6일 학생회비를 횡령한 혐의로 광주 A전문대 총학생회장 이모(2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대학 축제 때 연예인 섭외비 등을 부풀려 1300여만원을 빼돌려서는 개인 술값 등으로 쓴 혐의다.

김윤호·최경호·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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