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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산불] 불길, 설악산으로…강풍에 속수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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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5일 산불로 가옥이 소실되자 양양군 강현면 지정3리의 한 주민이 타버린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다. [강원일보 제공]

▶ 낙산사 스님과 신도들이 불에 타 주저앉는 건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연합]

▶ 산불이 거센 바람과 함께 민가를 덮치자 강현면 금풍리 주민이 태어난 지 열흘된 새끼 염소를 안고 대피하고 있다. [연합]

"설악산 국립공원을 사수하라"-.

낙산사를 삼킨 불길이 강한 바람을 타고 북상하면서 설악산 국립공원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6일 0시 현재 불은 둔전저수지의 바로 남쪽인 물갑리까지 번진 상태다. 국립공원 경계선에서 3.5㎞인 지점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박용우씨는 "불이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둔전저수지의 남동쪽 1㎞까지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 대청 분소 직원들은 비상 근무 상황에 들어갔다.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는 6일 새벽 직원과 공익근무요원 등 120여 명을 투입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할 계획이다.

동해안의 낙산사까지 태운 이번 불의 발화지점인 양양군 화일리 야산은 국립공원의 3~4㎞ 남쪽 지점이다. 국립공원 지역은 산악 지역이어서 초속 10m 이상의 강풍이 불씨를 옮길 경우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산악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둔전저수지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서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해발 1708m)이다.

이 때문에 소방 당국은 둔전저수지를 설악산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보고 있다.

1980년 500㏊의 산림을 태웠던 양양 산불이 났을 때 둔전저수지는 산불이 설악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했었다. 6일 0시 현재 불은 국립공원 주변의 2부 능선 정도까지 타고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8부 능선부터다.

공원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국립공원 인근인 물갑리 소나무 숲은 거의 불탔다. 국립공원 안은 주로 참나무 숲인데 사람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많기 때문에 불이 옮겨 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걱정했다.

또 동해에서 가장 가까운 설악산 국립공원의 시작 지점인 낙산사 북쪽의 정암리에서도 불길이 거세게 번지고 있는 데다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왔다갔다 하고 있어 어디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날 낙산사를 태운 불길 정도의 위력이면 불이 국립공원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설악산 국립공원 지역이 전문 산악인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원시림 등이 있어서 한번 불이 붙으면 진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아직까지 산불 지역에 남동풍보다는 남서풍이 자주 불고 있어서 설악산으로 불이 번질 가능성이 낮은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립공원 설악산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5일 밤과 6일 새벽까지의 풍향과 풍속이 설악산을 지킬 수 있을지의 관건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18일 설악산 국립공원 내 목우재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나 큰 피해 없이 15분 만에 진화됐으며 97년 5월 1일에는 설악산 권금성 주변에서 불이나 3㏊의 산림을 태우고 10시간 만에 진화된 적이 있다.

또 3700㏊의 산림을 태웠던 96년 4월 고성산불 당시 설악산 인근 10㎞ 지점까지 불이 접근해 초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설악산은 4일부터 입산이 통제된 상태다. 지난달 21일부터 봄철 입산통제를 하려 했으나 당시 적설량이 많아 화재 위험이 줄면서 입산 통제가 늦어진 것이다. 최근 들어 쌓였던 눈이 기온이 올라가면서 사라진 것이 현 상황에서는 산불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하고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65년 11월 천연기념물 171호로 지정됐고 70년 다섯 번째 국립공원이 됐다. 82년엔 유네스코가 한국 유일의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또 희귀종을 포함한 2000여 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자연자원의 보고다.

이외에도 물갑리와 2㎞쯤 떨어진 둔전저수지 인접한 곳에 보물 438호인 진전사지부도가 위치해 있어 낙산사에 이어 또다시 문화재가 훼손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소방 당국은 방어선을 구축해 더 번지지 않도록 지켜볼 뿐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국립공원의 동남쪽 경계선이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불길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양양=특별취재팀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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