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산불] 잡히던 불길 되살아나 낙산사 덮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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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전 낙산사 본전인 원통보전과 7층 석탑의 불타기 전 모습. 7층 석탑에는 고려시대 불교 미술의 여운이 고스란히 깃들여 있었다. [중앙포토]

화재 후 5일 산불이 옮겨 붙으면서 잿더미로 변한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7층석탑(보물 제499호)만이 말없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

불길 피한 홍련암 낙산사 경내가 전소됐지만 해안가 절벽에 위치해 절경을 자랑하는 홍련암(사진)과 의상대는 화마를 피했다.[연합]

강원도 양양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천년 고찰인 낙산사까지 불에 타버렸다. 특히 이날 불로 절 안에 있는 16채의 전각 중 10채가 소실됐다. 그러나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의상대와 홍련암.보타전.해수관음상 등은 불길을 피했다.

◆"불에 타 버린 문화유산"=낙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임시로 설치된 강원도청 상황실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 낙산사 주변 송림으로 번진 불이 낙산사 서쪽 일주문을 태운 뒤 원통보전(圓通寶殿.본전)으로 옮겨 붙었다는 것이다. 새벽에 시작된 화재가 진압돼 잔불만 남은 것으로 보였지만 오후 들어 다시 불길이 거세진 것이다. 여기다 심한 바람으로 인해 불길이 낙산사 남쪽과 서쪽으로까지 번져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낙산사 주변에 헬기 10여 대를 띄우고 인력을 집중 투입했지만 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오후 4시5분쯤에는 낙산사 안에서 진화작업을 하던 속초소방서 소속의 펌프차 한대가 불길에 휩싸였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 관계자는 "연기가 너무 심해 화재 진압용 헬기가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다"면서 "소방차량을 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10분쯤 절에서 빠져나온 정념 주지스님은 "문화재 일부는 절 입구에 있는 의상교육원 1층 강당에 옮겨 놓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의상교육원에는 보물 1362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과 신중탱화.후불탱화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낙산사는 2년 전 전쟁이나 산불 등에 대비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의상교육원을 보물 보관소로 활용하기로 했었다.

또 지성 스님은 원통보전에 남아 "절이 불에 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하다 오후 3시30분쯤 극적으로 탈출했다. 지성 스님은 "육신은 아무것도 아닌데 수행 중에 불을 피해 달아난 것이 부끄럽다"며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사양했다. 이날 5시30분쯤 불이 진화되기까지 2시간30분 만에 원통보전과 고양당, 일주문 요사채, 원장, 홍예문 등 목조 건물과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 등이 모두 불에 타 훼손됐다.

◆"급박했던 순간들"=낙산사에 첫 번째 위기가 닥친 것은 이날 오전 6시쯤. 낙산사 일주문에서 바로 앞까지 산불이 번진 것이다.

긴급출동한 군경과 의용 소방대 등이 도로를 중심으로 배수진을 친 가운데 2시간여에 걸친 사투를 벌인 끝에 원통보전 등 절의 주요건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오전 7시쯤 낙산사 남쪽 500m 지점인 낙산해수욕장 소나무 숲에 불씨가 다시 날아들었다.

경찰과 소방대원 800여 명이 진화에 나서는 동안 스님과 신도들은 긴급히 건칠관음보살좌상과 탱화들을 의상교육원으로 옮겼다. 또 원통보전과 보타전 등의 목조 건물과 사찰 주변 산림에 물을 뿌리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러나 관공서와 신도.스님이 하나가 된 '낙산사 사수작전'은 삽시간에 절을 집어삼키는 화마의 위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정념 스님은 "소나무 숲의 불길이 걷힌 뒤 절 주변에 물을 뿌려 대비해 줄 것을 수차례 종합상황실에 요구했지만 한 차례도 헬기가 다가오지 않았다"며 "재산피해만도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복구 지원 방침"=조계종은 이날 오후 긴급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피해복구지원을 위한 선발대를 파견했다. 문화재청도 "현재 피해액은 30여억원으로 추정되며 낙산사 복구를 위해 복권기금으로 확보한 문화재 긴급 보수비 70억원 중 필요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방비 확보 절차 없이 국비만으로 전액 지원해 신속한 복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양양=특별취재팀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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