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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오경박사의 활동|김창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에서 문자의 사용은 5세기부터였다. 그것은 다음의 몇 가지 자료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유명한 우전팔번궁에 소장된 인물화상경의 명문에는「계미의 연의 팔월」에 『대왕과 남제왕이 의시사가궁에 있을 때 사마라는 사람이 그들의 장수를 위하여 개우비직·예인 금삽리 두 사람에게 만들게 한 거울이라』고 기록돼있다.
그러한데「계미의 해」는 윤공천황의 서기443년(계미년)설과 서기503년 설이 있어 상당히 주목됐었다.「제기」(왕위계승을 중심으로 한 기록)와 『송서(본기 이만전)에 나오는 왜왕제와의 재위기간 및 상황이 부합되며 5세기 후반에 비후의 강전선산고분에서 출토한 대도의 명문에도「치천하복궁미서치대왕」이라 명기돼 있으므로 문자의 사용을 443년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문명의 기초가 되는 문자를 사용함에 이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일찌기 백제문화사절로 파견된 박사 왕인 및 후예들의 공적을 부정할 수 없을 줄 안다. 또한 6세기에 이르게되자 무한히 변천된 역사에 적응하여 백제의 일본에 대한 새로운 문화시책의 일환으로 더욱 적극성을 띤 학문의 최고 전문가들인 오경박사를 파견하였다. 오경박사라는 것은「시경」「서경」「역경」「춘추」「예기」의 오경에 밝은 전문학자를 말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시경은 사람의 마음과 정서를 맑고 깨끗하게 하는 글, 역경은 천지이치를 터득하는 글, 서경은 역사·정치교훈을 하는 글, 춘추는 역사비판과 논평을 하는 글, 예기는 예의·제도를 배우는 글 등인데, 각 분야의 최고전문학자를 박사로 칭한다.
그리하여 513년에 단양이박사가 도일하였고, 2, 3년 뒤 고안무 박사가 건너갔다. 각각 백제국에서 대화정부에 파견돼 간 것이다. 그들은 교대로 강설하였으며 단양이박사가 강설을 마치고 귀국하면 고안무박사가 도일하여 경전을 강설하였다.
553년에는 오경박사 외에도 역박사·의박사들도 교대로 대화정부에 파견돼갔고, 다음해 역박사 시덕왕 도량, 역박사 고덕왕 후손 등이 파견되었으며 오경박사도 고덕마, 정안박사와 왕류귀박사 등 계속 교대하여 파견되어갔다.
그들의 학식은 당시 궁정인에게 큰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이다. 특히 점술에 관한 지식과 역법에 관한 서적은 당시 관리들의 흥미를 크게 돋우었다. 술서 역서 등도 박사의 교대를 통하여 편해짐에 따라 종래의 점술법과는 판이하므로 크게 변화를 가져왔고 따라서 궁정의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때에 음양오행의 사상도 서서히 전수하는 등 오경박사들의 활동은 궁정의 지도자층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일반민중에게 전파하여 신학문운동으로까지 발전하여 크게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영향력이 컸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상=기·및 상전정소「고대국가성립의 연구」참조).
그러나 박사들의 눈부신 활약은 단순한 문화교류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고 6세기이후 백제의 정책이 적극화하면서 원교정책의 강화에 있어 절대 필요했던 것이다.
또 하나 불교를 일본에 이식한다는 문화시책의 중요한 일면이 있는데 오경박사들의 임무에는 그러한 장차의「불돈이식」에 대한 정지작업의 성격마저 띠고 있었다.
일본의 고대아악은 백제· 고구려·신라 등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라악은 윤공천황 4년(453년) 에 최초로 전래해간 것이고, 백제의 악은 흠명천황 15년(554년)「우다마이노히도」악인·시덕삼근·계덕기마차·계덕진노대덕진타가 도일하여 교대로 주악을 했다 (일본서기) . 지통천황(687년) 때는 종종 백제·신라·고구려 등 삼국의 주악을 했다. 지금도「아악제」에는 백제금·신라금·고려적 등이 나량의 정창원에 보존돼있다.
추고기 20년 (6l3년)의 기록에는 『백제인「미사시」를 나량현기성군에 거주케 하여 소년들을 모아 기악을 습득케 하였다. 진야수제자·신한제문 2인에게도 가르쳐서 이를 전수케 하였다. 지금의 대시수·쇄전수 등의 조다』라 하였다. 이 백제인「미사지」가 일본기악무의 시조라는 것이다.
토무대는 백제인「미사시」가 음악을 가르치던 곳. 지금의 국립음악학교에 해당한다. 이 곳 일대는 일류의 외래음악가들이 집중하였던 곳으로 한때 성황을 이루었었다고 한다. 지금에는 성하군사옥촌에「악호향」이 있어서 궁정의 필요에 응하고 있다. (선희아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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