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부모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가 시집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날 낳아 주신 부모님과 형제들과 헤어져 납의 집 가문에 들어가 그 집안의 법도에 따라 살기를 10여년.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릴 기르고 가르쳐 주신 부모님 은혜가 새삼 뼈저리게 느껴진다.
우리 부모님은 계속 딸만 아홉을 낳으시다 끝으로 아들 하나를 낳으셨다. 딸 아홉이라면 누구나 입을 벌린다. 낳고 보면 또 딸이고 또 딸이고.
지금은 아들·딸 구별 없이 둘 낳기 운동이 전개되는 시기지만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여자라면 누구나 그 섭섭함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나 남편에게 얼마나 미안했을까? 그러나 누가 보든지 우리 부모님의 표정에서는 그런 우울이나 실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심덕을 하늘이 가상히 여겨 아들 하나를 점지 해주셨다고 남들은 말한다. 그때의 기쁨 무엇에 비했으리.
딸 아홉 중 7명은 출가하여 제각기 잘 산다. 그만큼 가르치고 출가시키기까지는 실로 말못할 숱한 쓰라림과 서러움을 겪으셨다. 그래도 남들에겐 조금도 표를 내지 않던 생활. 지금 생각하면 우리 부모님은 실로 위대하시다.
지금은 친정도 아무 걱정이 없다. 아버님의 생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여기서 6백리 길이다. 한달 전부터 나는 친정에 갈 날을 달력에 표시해놓고 어린애처럼 기다렸다. 어제는 아빠와 같이 나가 내 옷을 찾아왔고 오늘은 막내 식이의 옷을 맞추었다.
넣어뒀던 신발도 꺼내서 손질하고 반지도 꺼내서 끼어봤다. 출가한 동생들이 한방 가득 모여 앉아 예나 다름없이 활짝 웃겠지. 나는 맏딸이기 때문에 반장노릇을 해야지.
나를 보시고 반가와 조용히 빙그레 웃으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어린애처럼. <김영희(충남 논산군 홍교동13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