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사랑을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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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숙이가 갑자기 찾아왔다.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편지 왕래는 가끔 있었지만 이렇게 졸업 후 처음 대하고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그 동안 숙은 더욱 곱고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숱한 이야기를 했다.
졸업 후 서로의 생활이며 친구들의 이야기 등.
아직도 시간이 많으니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시내 구경을 시켜준다고했다. 숙이는 약간 주저한다.
그런데도 억지로 끌고 나가려고 했더니 미안해하면서 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러 왔다가 잠깐 들른 것이라고 한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가야겠다고 일어선다.
편지하겠다는 어설픈 인사말을 하는 숙이의 눈빛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학교 때는 연애무용론의 열렬한 지지파였고 또 「플라토닉」 사랑을 논하고 「릴케」를, 「니체」를 알기 위해서 밤을 하얗게 새우던 숙이가 저렇게 눈빛을 빛내며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나에게 이야기할 정도로 변한 것은 정녕 무엇일까?
학교 때의 「아카데믹」했던 숙이의 분위기는 하나도 없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정녕 저렇게 변하게 될까? 알 것 같으면서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성연희(경기도 인천시 주안동 871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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