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갑 특파원 월남 군사평론가 「트루옹·손」씨와 단독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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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월남정부군에 의한 「쾅트리」탈환작전이 거의 실패한 것과 때를 같이해 「마틴」평화협상이 미국대통령 선거전의 기복을 반영하면서 미묘한 부심을 반복하고 있다. 「키신거」·「례·둑·토」간의 비밀회담에서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져 궐 미대통령선거전에 월남전타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조심스런 악관론이 「워싱턴」에 나도는 가운데 「키신저」보좌관이 「사이공」을 방문했고, 또 「티우」가 자기의 장래에 대한 일말의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전황·선거전·협상의 삼각기류가 혼재하고 있는 오늘의 월남정세를 분석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하노이」가 과연 미국의 선거전을 의식한 또 다른 군거공세를 시도할 것이냐 하는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월남의 공산권문제 전문가이며 군사평론가인 「보·트루옹·손」씨는 본사 신상갑특파원과의 단독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있다.<편집자주>
지난 3월말 개시된 월맹군의 대공세이후 월남군이 벌이고있는 「쾅트리」「빈딘」 및 「안록」일대 등을 비롯한 실지회복작전은 상당한 시일이 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동감이다. 어쩌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쾅트리」생의 구석구석을 탈환하기는 연말까지도 어려울 것이다. 월남군은 전술면에서 「콘툼」「안륵」 등 요충지의 방위를 늦출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월맹군은 최근에 와서 「사이공」주변과 「다낭」주변에 대한 산발적 공격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그들이 수비태세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보이고있어, 전망은 더욱 어렵게되었다.』
이번 월맹공세의 1차적인 목적이 월남영토의 부분점령 후 이를 장기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견해는 타당한가?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먼저 월맹의 1차적인 목표는 「닉슨·독트린」과 평정계획을 파괴하고 68년 구정 공세 후 파괴된 그들의 세포 조직을 재건하는데 있다고 보여진다.』
「쾅트리」탈환작전으로 인해 도리어 「후에」방위망이 허술해진 것은 아닌가?
『월맹군의 「후에」공격능력은 회의적이다. 강력한 미군의 공중지원이 지속되고 월맹군의기동력이 약화되었으며 저들이 공격의 계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쾅트리」공격이 힘든 이유는?
『무엇보다도 월맹군이 결사방어하고 있고 또 「쾅트리」의 성채는 공산군에 유리한 요새를 마련해 주었다. 대조적으로 「빈딘」생의 공산군은 거점이 빈약했다. 또 한가지는 「빈딘」생에는 한국군 맹호부대의 지원이 버티고 있다. 따라서 「빈딘」생의 탈환은 용이할 것 같다.』
「안록」시는 완전히 월남군 수중에 들어있으나 「사이공」에서 「안록」시에 이르는 번 도로는 여전히 공산군수중에 있다. 도로를 차단하고 있는 소수의 월맹군을 격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13번 도로 개통작전을 별이고 있는 월남군부대는 최강의부대가 아닌데다 그곳의 지형이 수비측인 공산군에 유리하다. 이외에 가장 큰 요인으로써 공산군이 그 지방 주민2만명을 인질로 하여 일종의 방탄벽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군이 오는 11월 미국대통령선거 이전에 재차 대공세를 취할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나도 그러리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번 공세와는 양상이 다를 것이다.
월남군참무총장 「비엔」장군은 공산군이 재침시 전폭기를 대거 동원할 것이라고 예상하고있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군기의 계속적인 폭격으로 사실상 월맹의 항공시설은 거의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북폭을 중단하지 않는 한 오는 11월 이 월맹공군력의 복구작업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앞으로 대공세가 있다면 규모가 작은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범위 안에서 단행되리라 분다. 그것은 년 이전에 있었던 것과 같은 전통적 「게릴라」전에의 복귀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도 선거전여하에 따라 양상이 결정될 것이다. 만약 「맥거번」의 위세가 동등해진다면 공격의 열도가 가열될지도 모른다…. 』미대통령선거전과 「파리」평화회담의 상호관계는?
『미국은 될 수 있는 한 선거전에 진지한 협상을 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진지한 협상태도는 전체적인 해결을 가져오기는 어려워도 휴전정도의 부분적인 타결은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9월이 될지 10월이 될지는 점칠 수 없다.
「닉슨」의 재선가능성을 전제로 할 경우 월맹측은 ①3∼4년간의 휴식기간이 필요하며②서두르는 것보다 기다리는 편이 전투·협상 양면에서 유리하고 ③공산권 안의 외교강화를 위해 시간을 벌어야한다는 이유로 부분적인 협상에 응할 것이다.』
월맹군의 이번 공세를 국방상 「지압」의 「실패작」이라고 보는 「업저버」들이 있는데, 이것이 월맹지도부의 개편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을지? 『월맹지도층은 오래 전부터 권력투쟁을 벌여왔으나 중대사를 앞두고서는 단결할 줄도 아는 자세를 보여왔다. 월맹권력구조는 친소파인 「지압」, 친중공파이며 인민회의의장 「트루옹·친」 및 중도파이며 수상인 「팜·반·동」과 당 제1서기 「레·두안」사이의 세력균형위에 유지되고 있다.
「지압」과 「친」은 전략관이 다르다. 「친」은 60년부터 년까지 「인민전쟁론」을 실천에 옮겼으나 좌절되었다.
「지압」은 이번 공세를 비롯, 자기류의 전략을 지난5년간 수행했으나 그 역시 소기의 성과를 못 거두었다.
결국 두 사람 다 한차례씩 실패했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 따라서 이번 공세가 실패한다해서 권력투쟁이 공공연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168년 구정공세에 비해 이번 공세에는 피난민이 월등히 많아 1백만명이나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68년에 도시를 비롯해 1백이 넘는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피난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4,5개 전선뿐이어서 피난이 쏟아져 나왔다.
둘째, 정치적인 것으로서 구정공세 때는 이번과 달리 주민들이 공산군의 승리를 믿어서 피난 갈 생각을 안 했다. 세째, 구정공세 때 피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겪은 그날을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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