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임금의 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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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태완선 기획원장관은 23일 민간기업에 대해서도 앞으로 1년간 임금인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24일 이 뜻을 부연하여『이것은 노동생산성의 범위 안에서 임금인상을 억제함으로써 제품의 원가상승을 막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로써 임금·물가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통제상태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
지난 20여년간의 「인플레」앙진이 건실한 경제풍토의 형성을 가로막아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언젠가는 무엇인가 경제활동을 정상화·합리화시키는 계기가 마련되어야만 이 나라 경제의 체질개선이 근본적으로 이룩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때문에 물가안정을 위해 비상대책을 제시하게 된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종합적인 결과로 물가의 등락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물가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정책이 안정화에 집중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외환·재정·금융정책을 위시해서 투자·저축 등과 관련된 제정책이 물가안정이라는 대전제와 부합될 때 비로소 안정정책이 실효있게 집행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들 제정책과 물가 및 임금동결정책의 상호관계를 이 시점에서 분명히 해야 할 필요는 더욱 절실하다.
우선 물가·임금 동결정책이 모순을 적게 발생시키려면, 결과적으로 물가가 안정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전적으로 성장·투자·외자도입 등 정책을 안정정책과 부합시켜야 한다. 즉 성장율을 8.5%로 예상하는 정책과 그를 뒷받침하는 외자도입 및 투자정책이 이 시점에서 물가상승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물가·임금 동결정책의 「타이밍」으로서 이 시점이 적절한 것이냐를 당국은 깊이 검토해야 할 것이다.「8·3」조치로 기업부담이 크게 경감되었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키는 주요인이 대국적으로 보아 차관원리금상환 압박에 있다는 사실은 가리울 수 없다.
또 성장주도기업의 부채비율이 70%선을 상회하고 있는 재무구조 하에서 이들이 부채상환을 순조로이 하려면 무엇보다도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거나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분명한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경기가 갑자기 호전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성장주도 기업들이 물가동결상태에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느냐 하는 점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모든 정책이 물가안정에 집약화되어 정책여건이 갖추어졌다고 가정하더라도 임금의 완전동결이 필요불가피한 것이냐 하는 점은 더 깊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생산성 증가분 만큼의 임금인상은 적어도 물가상승요인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물가상승률 3%에다 생산성증가율을 가산한 임금인상을 허용해도 물가정책과 모순은 없다 하겠는데, 일체의 임금인상을 동결시킨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분배정책 사회적 형평성 등으로 보아 문제가 있다.
지난 67년 이후의 노동생산성 향상율은 연평균 15.9% 수준에 이르고 있음이 사실이라 한다면, 임금의 완전한 동결로 노동자들은 매년 18.9%의 상대적 손실을 입는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같은 기간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8.8%밖에 상승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사실이라면 과거 5년간의 임금인상이 물가에 작용했다는 견해도 타당성이 적은 것이다.
요컨대, 물가안정을 최우선적인 정책과제로 삼는다는 일은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나, 정확한 물가상승의 주요원인을 밝혀서 이를 배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동시에 물가상승의 원인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임금인상까지 막는 것은 결코 현명한 정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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