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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마지막까지 싸운 의지의 재민들|서울신정·송정·군자동 주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 영등포구 신정동·목동·구로3동, 성동구 군자동 등 일부지역은 8·19물난리에서도 가장 오랜 꼬박 5일동안을 물속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하나같이 뭉쳐 굳은 의지로 굶주린 배를 이기고 수마와 싸워 이겨냈다.
신정동
신정동 144·149, 목동409·157일대 수재민 1만7백여가구 5만3천여명은 23일 상오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겨우 세간을 찾아 나섰으나 5일 동안 겪었던 그 난과 시련은 너무 큰 것이었다.
일대에 수마의 첫발이 날름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일 새벽3시 쯤.
마당·부엌·방이 차례로 물 속에 잠겨버린 집이 한 채 두 채씩 늘어가기 시작, 주민들은 마을위쪽 안양천쪽으로 모두 피난하기 시작했다.
그 후 삽시간만에 온 마을이 물바다가 됐다. 가재도구·침구 할 것 없이 거의 건져내지 못한 것은 물론.
이 때부터 주민들은 둑에서만 물 빠지기를 기다려 서로 도우며 허기진 배와 밤추위와 싸웠다.
수재민들은 맨 처음 양평동 봉영여중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그 곳으로 갔었으나 이미 다른 곳 주민들로 꽈 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친척집을 찾아 다른 곳으로 피난한 사람을 빼놓고는 마을에서 안양천쪽으로 줄기찬 빗속을 걸어갔다.
이곳에서 5일 밤낮을 버틴 것. 그러나 구호의 큰 혜택보다는 서로 도왔기 때문에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21일 상오까지 도로가 침수되어 안양천둑은 구호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했었다. 21일 하오에야 겨우 가구 당 라면1봉지씩이 돌아갔다.
한정숙씨(33·여·신소동 18통9반)는 19일 새벽4시쯤 갑자기 잠자리로 밀려든 탁류를 피해 어린 4남매를 데리고 둑위로 피신한 뒤 매일 4시간 걸어서 당산동 친척집에서 얻어온 밥으로 한끼씩을 때워 견뎌냈다.
수재민들은 가진 끼니를 한술씩이라도 나누어 먹었고 주로 빵·마른 생선 등을 뜯으며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던 것.
주민들은 화곡동에 30만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비만 오면 마을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공사가 착수되면서 배수로인 「남승수로」를 없애버려 빗물이 마을로 집중, 물난리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목동양수장은 일대 6백49정보의 통리면적을 배수하기 위한 양수기 2백마력짜리 2대, 1백50마력 1대 등 3대는 이곳의 물난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송정동
서울성동구송정동74 19통13·14반 52가구
3백여 주민들은 23일까지 5일째 수마와 싸워 이겼다.
이곳 수재민들은 이날 상오에야 물 속에서 가재도구를 건져 햇볕에 말리고 떠내려온 대나무·짚단·「비닐」 등을 주워 가건물을 짓기에 바빴다.
일대는 가난한 판자촌으로 지난 일 유일한 방파제 전농천둑이 터져 더욱 피해를 보았다.
주민 이명활씨(34)가 물에 빠져 숨졌고 1년전 마포에서 이사, 오리를 치던 신관우씨(29)는 1천마리를 몽땅 물에 떠내려 보냈다. 박순익씨(41) 등 주민 4명은 금붕어·잉어 등 양어장 1만5천명(싯가 1천여만원)을 유실당했다.
신씨는 22일 상오 물에 떠있는 오리를 건져 평소 3백50원하던 것을 30원에 팔며 끼니를 때워 물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 동안 74번지 청년20명은 13반장 이주원씨(37)를 앞장으로 허기를 이기며 밤낮으로 뗏목을 타고 물에 잠긴 마을의 도둑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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