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모란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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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평양성은 옛날에는 기자가 도읍 했던 곳이라 해서 기성이라고도 했고 혹은 패성이라고도 했다.
서울의 미가 남성적인 미라 한다면 평양의 미는 우아한 여성적인 미라 하겠다. 문자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인상을 준다.
예부터 평양을 색향이라고 부른 것은 『사람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들어가면 사랑을 하고싶다』는 「괴테」의 명언에 그 함축이 있다고 본다.
을밀대와 마주앉은 모란봉은 을밀대 보다 약간 높았으나 오랫동안 정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말기에 모란봉정상에다 누각을 짓고 최승대라 이름하였다. 이 최승대에서 평양성을 굽어보면 절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전면에는 대동강, 후면에는 보통 강이 굽이쳐 흐르는 비옥한 평야 중간지대에 평양은 위치하고 있다.
평양에 있던 가장 역사가 오랜 숭실 학교의 교가에도 <모란봉이 다가오다 돌아앉으며, 대동강수 흘려내려 감도는 곳에>라는 가사로 시작될 만큼 평양하면 대동강과 모란봉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먹는 과자도 모란봉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 많았다. 모란봉 밑에는 「오마끼노차야」(「모란봉 찻집」이라는 일어)라는 일본식요릿집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소위 황족이나 귀족, 저명인사들이 평양을 찾을 때는 으례 여기에 들렸었다.
그리고 그 찻집 옆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안에다 곰을 몇 마리 길러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서 서쪽을 굽어보면 해방 후 북한의 모든 큰 행사가 거행되어온 공설운동장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모란봉에서 동북쪽으로 대동강상류에 위치한 주암산까지 뻗친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은, 마치 병풍을 둘러친 듯 일대 위관을 나타내고 있다.
모란봉 주위에는 산토끼들이 뛰어다니고 꿩들이 날기도 하며 이름 모를 각색 들꽃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나도 소년시절에 식물채집과 곤충채집을 위해서 해가 가는 줄도 모르고 놀러 다니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여 있는 곳이다.
어른들은 이 모란봉꼭대기에서 대동강을 향해서 돌팔매질 경쟁을 하는 일이 많았다. 팔 힘이 센 사람은 던진 돌이 거의 대동강물위에 떨어지도록 하는 명사수도 있었다.
일제 말기에는 조국광복을 기원하는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새벽 산책 겸 기자림에서 애끓는 기도를 드린 후 을밀대 밑 바위틈에서 나오는 약수에 목을 추기고 다시 모란봉에 올라 힘껏 창공을 향하여 큰 소리로 호령을 쳐보는 인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모란봉아래 위치한 영명사는 역사가 오랜 절로도 유명하지만 방랑시인 김삿갓이 승려들을 골탕먹이던 여러 가지 일화로 더 유명하다.
지금쯤 모란봉은 「토치카」와 땅굴로 벌집처럼 되었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 모란봉정상에 태극기가 휘날릴 날도 멀지 않았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모란봉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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