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은 「상처」|되살아나는 「일색」|광복 27주…한국 속의 일본<일본인 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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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반세기가 넘는 27년을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들은 이 땅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더러 남모르는 설움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여성이 있는가하면 이웃간에 서먹서먹하다는 사람도 있다.
부산시 중구 영주동 영주 「아파트」3구역 가동에 살고있는 「와다·미쓰에」여사(58)는 해방 직후부터 광복절이면 울적해진다고 했다.
「와다」여사는 남편 유학곤씨(3년 전 작고)와 결혼,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서울 명동 현 「유네스코」회관 건물 옆에서 「미야지마」라는 아담한 찻집을 경영하다가 8·15를 맞았다.
남편이 따뜻이 보살펴주는 바람에 남들처럼 일본으로 떠나지 못한 부부사이였다. 그러나 27년 동안은 흡사 『숨어사는 생활』이었다고 했다. 해방직후 『왜국 여자는 물러가라』고 날카로운 서슬처럼 눈총맞던 주위의 호통이 뼈에 사무쳤고 지금도 그 상처를 씻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남편의 사랑과 두 아들을 키우는 보람으로 살아왔으나 둘째아들 경식씨(25·가명) 가 어렸을 적에 당한 수모는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동무들로부터 「아이노꼬」라는 놀림을 받고 울며 돌아왔을 땐 죽고 싶었다는 것.
아직도 완전히는 한국말을 익히지 못한 「와다」여사는 「요꼬하마」의 어느 여자전문학교 재학 시절 유씨와 6년 이상 연애 끝에 결혼했다. 서울·부산 등 한국에서 30년을 함께 사는 동안 「요꼬하마」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 「와다·도꾸꼬」여인(54)조차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한국에 뼈를 묻고 살고 싶을 뿐, 이제 자식이라도 차별을 안 받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단하나 소망』이라고 한숨지었다.
부산에만 이 같은 처지에 있는 일본여성만 1백 여명에 이른다.
주한 일본대사관 영사부에 의하면 현재 부산영사관관내인 부산·경남북·전남·제주지역을 빼고 5백 여명의 일본여성이 한국에 살고있다.
이중 70년10월 조사결과 3백17명이 일본국적, 나머지가 2중국적 또는 한국국적 소유자라 고 한다.
일본대사관측은 66년부터 일본정부의 비용으로 희망자는 주거지·주택 등을 알선 받아 국적을 불문하고 영주 귀국시키고 있다.
귀국 시 미성년자인 자녀들까지도 같이 가게되고 한국인 남편이나 성년자녀는 이산가족이 안 되게 배려, 법무성에서도 정식 입국신청이 들어오면 우선적으로 입국시킨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건으로 여명의 한국남성이 이미 일본에 건너갔고 일본여성 직계가족은 69년 21가구 47명, 70년 56가구1백76명, 71년 54가구 1백43명, 금년 들어 7월말 현재 23가구 57명이 귀국했다.
일본정부는 생활고에 있는 일본인들을 계속 영주 귀국토록 하는 정책을 계속 촉진, 연도사업별로 국가경비로 국적불문하고 친족방문도 알선한다고 했지만 일본에 가서도 후생시설을 전진하는 푸대접은 매한가지.
서울에는 일본인 여성들의 상부상조모임인 부용회(회장 목촌희미·59)가 63년 만들어져있다.
영등포구 흑석동 199의4에 본부를 두고있는 이모임은 서울 2백 명을 포함, 전국에 6백 여명의 회원이 있는데 매월13일 한차례씩 모여 서로 소식을 전하고 딱한 회원을 돕기도 한다. 회원은 30% 미망인, 70%가 남편이 있는 회원들이다.
50∼60대가 가장 많고 80고령도 있다. 능력에 따라 월50원 이상 회비를 거둬 기금 1백여 만원을 모았다. 1남5녀를 둔 부회장 강기좌세자 부회장은 『해방직후는 더러 고독을 느꼈으나 이제는 옛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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