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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대원군' 납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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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포항이 기적을 만들었다. 포항 수비수 김원일은 1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와의 2013 K리그 최종전에서 0-0으로 맞선 후반 50분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김원일의 골이 터지자 포항 선수들이 일제히 벤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울산=뉴시스]

황선홍(45)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두고 사람들은 유약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카리스마의 화신’ 홍명보(44) 국가대표팀 감독과는 대조적이다. 인상이 부드럽고 안경을 껴서 학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약한 지도자는 결코 낼 수 없는 성과를 그는 거뒀다.

 한 시즌에 정규리그와 FA컵을 모두 우승한 건 K리그 클래식 역사상 황선홍 감독이 처음이다.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토종 선수로만 이룬 성과라 더 값지다.

황선홍 포항 감독이 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울산=뉴시스]

 ◆홍명보와 엎치락뒤치락=황선홍 감독은 일찌감치 지도자에 뜻을 뒀다. 2003년 이회택(67)·허정무(58) 감독 등을 보좌하며 전남 2군 코치부터 시작했다. 홍명보(44)는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며 감독에는 큰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아드보카트(66) 감독이 부임했을 때 코치로 전격 발탁된 건 홍명보였다. 황선홍도 물망에 올랐고, 본인도 원했지만 홍명보에게 밀렸다. 홍 감독은 이후 2009년 U-20 월드컵,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거쳐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성과를 올리고 지난 6월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홍 감독이 각급 대표팀에서 순조롭게 커리어를 쌓는 동안 황 감독은 K리그에서 좌충우돌하며 내공을 키워나갔다. 200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했지만 부산에 머무는 3년 동안 한 개의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신세대 감독인 줄 알았는데 훈련을 너무 혹독하게 시킨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부산에 부임할 때 황 감독은 “바르셀로나의 축구를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지만 뭔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1년 친정팀 포항에 부임하며 황 감독의 지도자 인생 시즌 2가 시작됐다. 첫해는 플레이오프에 올라 1-2로 패했다. 부산 시절과 달리 포항에서 황 감독은 선수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며 가슴에 불을 댕기는 법을 배워나갔다. 지난해 FA컵에서 지도자 인생 첫 우승을 한 뒤 황 감독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올해는 더 강해졌다.

 ◆황선대원군의 스틸타카=올 시즌 K리그 팀들 사이에서 ‘올해 포항의 우승은 좀 곤란하다’는 미묘한 공감대가 있었다. 비싼 몸값의 외국인 선수가 하나도 없는 포항이 우승하면 그걸 어떻게 설명하는가라는 볼멘소리였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빗대 ‘황선대원군’이란 별명이 생긴 황 감독은 “어설픈 외국인 선수가 있는 것보다 조직적인 플레이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항은 2003년부터 포철동초-포철중-포항제철고로 이어지는 유소년클럽 시스템을 본격 도입했다. 영남대는 포항의 U-22팀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신화용(30)·황진성(29)·신광훈(26)·김대호(25)·이명주·고무열(이상 23)·김승대(22) 등 유소년 팀에서 커온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이룬다. 어릴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기에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탁구 치듯 패스를 주고받는다는 의미)에 버금가는 ‘스틸타카(스틸러스+티키타카)’가 가능했다. 데얀(32·서울)·김신욱(25·울산·이상 19골) 같은 걸출한 공격수는 없지만 조찬호(27·9골), 박성호(31)·고무열(이상 8골), 이명주·황진성(이상 7골), 노병준(34·6골) 등 득점 루트도 다양하다.

  선두로 순항하던 포항은 9월 중순 이후 황진성이 부상으로 쓰러진 뒤 선두를 울산에 내줬다. 그러나 황 감독은 선수들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도리어 “언젠가 기회가 온다”며 격려했다. 포항은 10월 FA컵 우승 후 분위기 전환에 성공하고, 막판 6연승을 거 뒀다. 울산과 최종전 하프타임에도 선수들에게 “골은 종료 1분 전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 말이 예언처럼 적중했다.

울산=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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