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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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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3조치」는 혁명적 수단에 의한 경제 체질의 개혁을 목표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충격도 컸고 기존 질서와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경제 체질 개혁이라는 기본 목표가 달성되려면 경제 각 분야에서 방향전환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제도적 보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기업의 부담 경감이 기업 활동의 향상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것은 물가의 안정과 성장으로 나타나야만 8·3조치의 의의를 뚜렷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의 정책 방향과 각 분문에서 나타날 경제적 반응인 것이다. 재정·금융·물가·기업 경영 등 모든 분야에서의 정책 과제와 방향을 「시리즈」로 엮어 본다.
사채 신고 3천5백억원은 사금융의 막중했던 역할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공금융의 미흡에 대한 채찍도 되는 것이다.
그늘로 흐른 금융의 줄기가 이토록 굵었고, 크고 작은 기업이 여기에 「파이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사채의 해악을 꾸짖기에 앞서 사채가 이토록 비대할 수 있었던 요인을 먼저 따져야 한다. 사채는 사회 여건의 소산이며 필요에 의해 생겼던 것이다. 공금융이 「커버」못한 공문을 메워 왔던 게 또한 현실이었다. 「8·3조처」는 혁명적 수단에 의한 사채의 공금 융화를 목표하고 있다.
제도적인 전환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법에 의해 사금융의 줄기를 일시에 제도 금융으로 흡수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소액을 제외한 모든 사채가 동결된 상태에 있다.
사금융의 동결은 공금융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이제까지 3천5백억원의 사채가 담당했던 역할을 공금융이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또 자세면에서 일대 개혁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사채의 흡수는 공금융의 기동성 회복과 효율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실 공금융의 경직화는 심각한 정도이다. 현실적으로 금융기관이 상업 「베이스」에 의한 정상적인 금융을 못하고 있으며 경영 감각도 마비된 상태에 있다. 관치 금융의 관료성·비능률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틈서리를 비집고 사금융이 그토록 비대했던 것이다.
우선 사금융을 양성화해야 하고 신용 대출을 늘려야 하며 사채가 흘러갈 수 있는 자본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사금융 양성화는 제도 금융의 보완으로 추진돼야 한다.
지난 국회에서 통과된 단기금융업법 상호신용금고법 신용협동조합법 등을 근거로 금융 기관을 보완할 제2금융단이 하루 속히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제2금융단이 형성되어 은행이 다 못하는 자금 수요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 한 사채 시장이 다시 비대할 우려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또 앞으로 은행 대출이 확대되더라도 기업의 담보 능력이 거의 한계에 찼기 때문에 추가 대출이 어려운 형편이다. 이를 위해선 신용 대출의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각종 신용 보증 기금의 증가에 의해 신용 대출 한도를 연내에 8백억원 선까지 늘릴 방침으로 있으나 운용면에서 이를 뒷받침 못하면 목적했던 성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신용 대출의 확대는 금융 업무의 탄력성 회복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경직화된 금융이 풀어질 수 있는 금융의 자주화도 시급할 것이다.
또 5백억윈의 산업 합리화 자금의 적정 배분, 2천억원 대환 자금의 효율적 사용도 금융 능률화의 한 척도가 될 것이다.
사채 시장을 대체할 금융의 보완 확대와 더불어 자본시장의 육성도 필요하다. 일반은 저축의 투자 대상으로서, 기업은 자금 조달의 새로운 「파이프」로서 의존할 수 있을 만큼 자본시장의 비중이 커져야 하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육성은 안정 기조의 견지, 기업 풍토의 개혁이라는 기본적인 바탕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운용면의 점진적인 개선도 특히 필요할 것이다.
공금융에 의한 사금융의 흡수는 필연적으로 국내 여신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재정안정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을 필요로 한다.
금년 재정안정계획은 국내 여신 증가율을 정부는 28%, IMF측은 24%를 주장, 아직 미결 상태에 있는데 이번 「8·3조치」를 계기로 여신 확대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정부는 국내 여신 증가율이 최소한 30%이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이를 토대로 IMF측과 하반기 안정 계획 협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8·3조처」가 안정 기반의 구축에 있으므로 신용 「인플레」를 막기 위해 통화량 증가율은 당초 계획대로 연20%선 이내로 억제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다.
IMF와의 협의 과정에서 국내 여신 증가율이 얼마로 되느냐는 앞으로의 공금융 확대의 결정적인 척도가 될 것이다. 사금융을 대체키 위해선 공금융의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안정 기조의 견지라는 「8·3조처」의 근본적인 목표에 일탈않기 위해선 유동성의 적정화가 특히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상치 요인의 조화는 금융의 능률화와 더불어 「8·3」조처 후의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것이다.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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