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대변인 웬만한건 "다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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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청와대 대변인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제를 본떠 공개형 브리핑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개혁의 골자. 그러나 대변인이 현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주변의 지원 체제도 미미해 국민의 알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백악관 제도를 들여다본다.

지난 7일 오후 백악관 브리핑실. 이라크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언론의 질문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도대체 전쟁을 왜 하려고 하느냐" "다음주에 유엔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느냐"-.

애리 플라이셔 대변인은 열심히 받아넘긴다. "지난 11월 중순 파월 장관이 한 유엔 연설에 답이 들어있다" "지금 말하기는 이르다"-.

팽팽한 공방전에 한 기자가 파고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공식 기자회견을 몇번 했는지 아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아직 국민이 잘 모른다는 투였다.

대변인이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여덟번이다. 대통령이 이처럼 언론을 기피해서야 되느냐"고 자신있게 지적했다.

그러나 곧 플라이셔의 반격이 나왔다.

"비공식까지 치면 어제 기자회견이 총 2백16번째다. 여기에는 90번의 신문.방송 단독 기자회견이 빠졌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총 1천2백여개의 질문을 받았다. 이는 주당 10번꼴이다…."

관련 질문은 더 나오지 않았다. 플라이셔는 이날도 평소처럼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고 브리핑을 끝냈다.

백악관뿐 아니라 매일 브리핑을 하는 국무부.국방부의 대변인은 백과사전이어야 한다. 자기 부처는 물론 범정부적 차원이나 국내외 주요 현안은 모두 맥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기자회견 횟수'같이 대변인이 운좋게 기억하는 사안도 많지만 기억에 없는 답변을 위해 대변인들은 두툼한 자료를 옆구리에 차고 브리핑룸에 들어온다.

지식이나 대 언론 솜씨만큼이나 대변인은 위상도 든든하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 칼 로브 정치담당 고문과 같은 급으로 연봉을 15만달러나 받는다.

경력이 이를 받쳐준다. 그는 10년 동안 의회에서 상원의원 공보보좌관, 하원 상임위 대변인을 지냈고 2000년 초부터 부시 대통령후보의 선거캠프 대변인으로 뛰었다.

1년 동안 대통령과 현장을 뒹굴었으니 대통령과 주파수를 잘 맞춘다.

대변인의 생명은 정보다. 알아야 답변할 수 있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존 덜레스 국무장관으로부터 소련 핵무기에 대한 기밀을 보고받은 뒤 바로 "짐(제임스 해거티 대변인) 방에도 들러 설명해주라"고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윌리엄 로브는 워싱턴 포스트지로부터 '대통령의 분신이자 또 다른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대통령의 마음을 읽었다.

정보에서 소외되면 '입'으로 버틸 수가 없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초대 대변인이었던 디디 마이어스는 최연소.최초의 여성 대변인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정보에서 빈약해 단명에 그쳤다. 브리핑 때 정부 고위급 인사계획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녀는 "내가 아는 한 인사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바로 5분 뒤 클린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인사계획을 발표했다.

백악관 전기작가인 헤이너스 존슨은 "오늘날 대변인의 브리핑은 TV.라디오로 생중계된다. 대변인의 자신없는 모습이나 거짓말은 바로 대통령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대변인이 뉴스를 생산하지 못하면 국정의 헤게모니는 의회로 넘어간다"고 지적한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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