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생전의 우인들이 말하는 그 면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생전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소설가 「F·스코트·피츠제럴드」(1896∼1940)와 「노벨」상 수상작가 「어니스트·헤밍웨이」(1899∼1961)와의 각별한 교우관계는 이들 사후에 계속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69년 미 「사우드캐롤라이나」 대학 「매듀·J·브루콜리」교수는 『피츠제럴드-헤밍웨이 연람』을 출판, 이들의 작품과 교우관계를 발표하여 주목을 끈바 있는데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이러한 출판계획이 시도되고있다.
『피츠제럴드-헤밍웨이 삽화』의 출판계획에 때를 맞추어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평소 가까이 지냈던 몇몇 인사 등은 특별히 모임을 같고 이들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먼저 파리의 「저널리스트」인 「모릴·코디」는 20년대에 「헤밍웨이」와는 가까이 알고 지냈으나 「피츠제럴드」와는 교우관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코디」는 「헤밍웨이」와의 친교에서 특히 생각나는 것은 그가 돈을 빌리는데 명수이며 술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 돈을 낼 때는 살짝 피해 자기에게 바가지 씌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프랑스 아카데미(한림원)회원인 「앙드레·샹송」은 「피츠제럴드」가 늘 숲 속에 빠져 살았으나 아주 정서적이어서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호하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20년대 중기 「피츠제럴드」, 「킹·뷔다」감독(『백주의 결투』등)과 함께 영화를 만든 일도 있는 「샹송」은 『「택시」운전사까지도 그를 어린애 취급하여 그가 술에 취해있을 때는 곱게 집으로 데려다주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샹송」은 또한 「피츠제럴드」가 일찍이 「젤다」라는 여성과 결혼했는데 이들 부부는 마치 귀여운 어린이 한쌍 같았다고 술회했다.
어느 날엔 가는 「피츠제럴드」가 「샴페인」병이 가득히 담긴 얼음 통을 들고 「샹송」의 집엘 찾아왔는데 6층에 있는 「샹송」의 방에 올라가는 도중 4층의 조그만 「발코니」에서 완전히 벌거벗고 「나는 「볼테르」다』 『나는 「루소」다』라고 소리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헤밍웨이」와 한때 몹시 가까웠으나 「헤밍웨이」의 비난으로 해서 사이가 벌어졌던 「로에브」는 「헤밍웨이」의 「테니스」와 「복싱」친구.
그는 「헤밍웨이」가 확실히 훌륭한 「복서」였으나 일반이 생각하듯 위대한 「챔피언」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점은 「코티」도 동감이었다. 「로에브」는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는 붉은 뺨, 아름다운 이, 그리고 늘 미소를 지닌 거인이었다고 회상했다.
「로에브」는 또한 「헤밍웨이」가 늘 그의 실생활 주변에서 그 작품의 등장인물을 찾았으며 그 자신 직접 투우 따위를 함으로써 즐겨 하계계급사회에 휩쓸리고자했다고 말했다.
이날의 모임은 「코디」 「샹송」 「로에브」등 참석자들로 하여금 「피츠제널드」나 「헤밍웨이」에 관한 어떤 이야기든 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들의 문학은 물론 사생활 뒤의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피츠제럴드-헤밍웨이 삽화』를 출판하려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다. <볼티모·선지=본사특약>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