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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구리 '치킨게임' 개막 … 둘 중 하나 치명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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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싸우다 친해진 이세돌(왼쪽)과 구리. 그러나 세상은 이 두 사람에게 ‘끝장 승부’를 보라고 주문한다. 사진은 10번기 개막식에서 손을 맞잡은 두 사람. [사진 한국기원]

“두려운 것은 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바둑을 두지 못하는 것이다.”(이세돌 9단)

 “이세돌과의 대결이 기대된다. 그와 60세가 될 때까지 겨루고 싶다.”(구리 9단)

 ‘Mlily 몽백합(夢百合) 이세돌-구리 10번기’ 개막식이 24일 베이징 캉라이더 호텔에서 열렸다.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 외에 대회를 후원하는 장쑤성 가구회사 헝캉(桓康)의 니장건 회장이 동석했고 CC-TV와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이 대거 취재에 열을 올렸다.

 단 둘이 겨루는 10번기는 패자에게 치명적인 점이 있어 우칭위안(吳淸源) 이후 사라진 대결 방식이다. 중국에서 건너간 우칭위안은 요미우리신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일본 최정상 기사들과의 ‘치수 고치기 10번기’를 벌여 연전연승했다. 우칭위안이 ‘살아 있는 기성’ 칭호를 얻은 것도 이 10번기 때문이다. 일본기원 첫 9단인 후지사와 호사이는 치수가 고쳐지자 치욕을 느껴 은퇴하기도 했다.

 이번 대결은 우선 치수 고치기가 아니기에 덜 치명적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기사였고, 현재도 최고 인기 기사이기에 패자의 타격은 매우 클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기원 류스밍 원장도 “이 대회 방식은 아주 잔혹하다. 패자는 계곡 아래로 떨어진다. 인간적으로 5대5 무승부가 최선의 결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세돌과 구리는 격렬한 승부를 거듭하면서 오히려 친해졌다. 무수한 상처 끝에 ‘절친’이 된 이창호-창하오의 경우와 흡사하다. 연초 구리의 결혼식이 멀고먼 충칭에서 열렸을 때 이세돌은 그곳까지 찾아갔다. 이번 10번기를 맞이해서도 이세돌의 시각은 일반의 우려와 조금 다르다. “구리는 내 바둑 인생에 있어 최고의 선물이다. 설령 대결에서 패배해 정상에서 추락한다 해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구리는 “이세돌은 내가 바둑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던 목표다. 지금까지 세 번 결승전을 벌여 두 번 지고 한 번 이겼다. 이번 10번기에선 꼭 이기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세돌과의 우정을 강조하고 있다. 어린 기사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지만 이세돌과 함께 60세까지 살아남아 바둑판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제한시간은 각 4시간으로 꽤 길다. 초읽기는 1분 5회. 내년 1월 26일 베이징에서 첫 판을 두고 11월 30일 저장성 핑후에서 10국을 둔다. 샹그릴라, 티베트의 라싸 등 중국 전역을 돌며 매달 한 판씩 둔다. 한국에선 제4국 한 판이 4월 27일 열린다.

 10억원으로 소문난 상금은 500만 위안(약 8억7000만원)이었다. 승자는 상금을 독식하며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의 여비만 지급된다. 먼저 6승을 하면 승부는 끝난다. 5대5가 되면 상금은 반씩 나눈다. 대회 후원자인 니장건 회장은 바둑광이라 할 만한 38세의 젊은 기업인이다. 세계대회인 몽백합배를 올해 창설한 데 이어 또다시 바둑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재미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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