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시위대 온다니, 밀양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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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야산에 건설 중인 송전탑 81호. 한전은 밀양시 단장면 등 16곳에서 송전탑 공사를 진행 중이며 최근 1기를 완공했다. [송봉근 기자]

#28일 오후 송전탑 건설이 한창인 경남 밀양시 상동면 . 이 지역 한 마을 에서 만난 주민 김모(50)씨는 또다시 몰려올 버스시위대를 걱정했다. 김씨는 “한전과 송전탑 특별보상안에 합의하는 동네가 늘면서 주민 갈등이 봉합돼 가는데 버스시위대가 오면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밀양시 산외면 주민 이모(47)씨도 “갈등이 있는 곳마다 버스시위대가 달려가 분란을 조장해왔다”며 “더 이상 외부 세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전은 지난 10월 2일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송전탑 16기를 세우고 있으며 최근 1기를 완성했다.

 #이날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조립공장. 400여 명의 근로자가 선박을 건조하느라 분주했다. 동시에 건조 중인 선박은 해경경비함 등 9척이나 됐다. 버스시위대가 한진중공업을 수시로 찾은 2011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31년째 근무하는 김홍배(51)씨는 “시위대가 떠난 뒤 노사가 손을 잡으면서 회사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버스시위대가 올 곳과 지나간 곳의 분위기는 이처럼 크게 달랐다. 한때 버스시위대로 몸살을 앓았던 한진중공업은 부활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밀양은 긴장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버스시위대는 30일 다시 밀양을 찾는다. 지난 10월 이후 2개월 만이다. 전국에서 2000여 명이 버스 70여 대에 나눠 타고 몰려온다. 송전탑 건설 반대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행사 후원계좌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64) 신부 명의로 돼 있다. 문 신부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 반대 시위 등에도 참가하고 있다.

 밀양에는 시위대를 반기는 사람이 일부 있기는 하다. 밀양시 단장·상동·부북면 등 3개 면 10여 곳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다. 상동면 도곡리 농성 현장에서 만난 주민 박상조(54)씨는 “시위대는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버스시위대를 반대하고 있다. 밀양시 사회·봉사단체협의회와 송전탑 경과지 5개 면 주민대표위원회는 지난 26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외부 불순세력의 밀양 방문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엄용수 밀양시장도 “지난 9월 한전이 마련한 송전탑 특별보상안에 30개 마을 중 23개(76.7%) 마을이 합의하면서 현재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진심으로 송전탑 건설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면 버스시위대는 오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2년 전 버스시위대가 휩쓸고 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상황은 이젠 딴판이다. 버스시위대가 다녀갈 당시만 해도 수주는 거의 끊겼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월 5년 만에 상선을 수주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척(6억 달러)의 선박 제작 주문을 받았다.

 인근 지역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 음식점 등 상점은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8년째 고깃집을 하는 김정옥(57)씨는 “버스시위대가 올 때는 아예 식당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영도조선소에 버스시위대는 2011년 6월 11일부터 10월 8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다녀갔다. 회사 측의 정리해고에 반대해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한 김진숙(52)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고 노조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오면서 노사관계는 악화됐다. 시위대가 떠난 뒤인 지난해 1월 강성의 민주노총 한진중공업지회 대신 ‘노사 상생 협력’을 내세운 온건 노선의 새 노조가 설립됐다. 극한 투쟁에 지친 노조원들은 새 노조로 소속을 옮겼다. 한진중공업 정철상 상무는 “휴업 중인 직원 400여 명도 새로 수주한 선박이 본격적으로 건조되면 모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부산·밀양=김상진·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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