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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교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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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무래도 이제 안일한 반공교육의 시대는 지나간 듯 하다. 이른바「대화 없는 대결」속의 반공교육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반공의 혼자 씨름,「샌드백」을 상대하는「복싱」, 혹은 모래 위에서 하는 헤엄치기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적절한 표현으론, 문자 그대로 허수아비(괴뢰)를 상대로 한 총검연습이었다 해서 무방하다.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그러나 정세는 변했다.
지금까지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렇기에 또「무시」해도 좋았던, 씨름의 상대가 돌연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때려도 반격이 없는「샌드백」이 아니라, 서로 주먹이「대화」하는「복싱」의 상대가「링」위에 등장한 것이다.
파도도 수심도 없는 모래 위가 아니라, 입맛 짭짤하고 물결거센 바 닷 속으로 우리는 헤엄쳐 들어가야 만 되는 것이다. 「북」은 이제 허수아비만은 아니게 된 것이다. 「악몽의 대상」인 괴뢰가 아니라, 「인식의 대상」인 대화고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반공교육을 실시하는 장이 달라져야 하게된 것이다.
혼자 씨름을 할 때는 상대를 몰라도 되었다. 없는 상대는 알 수도 없었다.「주먹의 대화」가 불가능한「샌드백」과의 대결에서는「대화의 술」이라고 하는「변증법」을 몰라도 좋았다. 모래 위에서 만의 헤엄치기에 선 바다의 생리를 알 필요도, 수심을 잴 필요도 없었다. 종전까지의 반공교육에서는 공산주의의 정체를 모르는 채로 일방적·감정적인 구호로 상대를 허수아비로 몰아치기만 하면 족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대화 속의 대결」의 시대에 있어서의 반공교육은 무엇보다도 먼저「지공」교육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북」의 체격과 체력과 기량을 몰라 가지고 그들과의 씨름에서이길 수는 없다. 김기수「챔피언」이「벤베누티」를 누르기 위해선 왼손잡이 적수의 모든 경기정보를 지실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반공교육도 이제 평안한 모래 위에서 물결 거친 바 닷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할 때이다.
우리에겐 생소한「지공」교육이지만 전혀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선 남가 주 대학·「밴더빌트」대학 같은데서「비디오·필름」등을 이용해서 실시한 반공교육「커리큘럼」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분단직후부터 동독과의 적극적인 대결·대화·교류 속에 발전해 온 서독의 반공교육도「지공」교육의 범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선진 우방의 좋은 본을 배워 우리에게 알맞은 지공교육의「모델」을 하루빨리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대화 속의 대결」에 있어서는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싸움이란 1회 적인 승부에서 결판 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다. 저쪽은 공산체제이기 때문에 열 약하고, 이쪽은 자유민주해제이기 때문에 우세하다는「선험적」인 판정은 없다. 강한 공산주의도 있을 수 있고 약한 자유민주주의도 있을 수 있다. 「대화 속의 대결」이란 공산주의에 대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을 매일 매일의 대결에서 계속 증명해야 되는 그러한 싸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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