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트리의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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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언젠가 「이스라엘」국방상 「다얀」은 미군은 베트남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예언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다수의 최신병기를 동원해도 속공과 기습을 주무기로 하는「게릴라」전을 당해 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속공과 기전과 야습은 바로 그 자신이 6년간 중동전쟁에서 완승을 거뒀을 때 쓴 주무기이기도 했다.
지난 5월1일 「광트리」시가 월맹군에 함락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전술 때문이었다.
그런데 외신보도에 의하면 이제 2개 대대의 월남군공정연가 바로 그「광트리」시의 일각을 탈환하고 전진사령부를 설치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월남군측에서 기약전법을 쓴 샘이다. 공정대란 2차대전 때부터 생겨났다. 흔히 2차대전의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한 전기는 44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작전의 승인은 독일차의 배후에서 근들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전투력을 약화시킨 공정대 였다.
한국전쟁 때 유엔 군사령관으로 있던 테일턴장군도 바로 이 공정대 출신의 용장이다. 그리고 보면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적군 배후에 공정대를 투하시키는 것과 같은 발상법에서 나온 것이었다.
「광트리」시 탈환작전에는 월남군측에서 사력을 다한 흔적이 역력하다. 「티우」자신이 선두지휘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중요한 뜻을「광트리」시는 갖고있다. 동시는 비무장지대로부터 30km 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러니 월남군·월맹군할 것 없이 양측에 모두 이 도시는 단순한 전략적 거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광트리시는 월남공화국의 생도로서는 처음으로 적군에 함락된 도시였다. 점령과 함께 월맹측에서는 임시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이것을 최대한으로 선전에 활용 했었다.「사이공」으로부터 6백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동시가 월남으로서도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 또 7월13일에 재개키로 된「파리」협상을 생각한다면 동시의 탈환여부는 미국과 월남측의 흥정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광트리」시 탈환에 결정적계기가 된 것은 역시 공정대의 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군의 피폭과 해안봉쇄가 보다 큰 전략적인 영향을 미쳤을 게 틀림없다.
물론「광트리」시의 탈환에는 2, 3일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도시의 탈환은 월맹측의 전쟁능력이 엄정나게 줄어든 것을 증명하는 것만은 틀림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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