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의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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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5 대 4의 다수결로 사형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판시하여 그 전면적 폐지를 향한 거보를 내디뎠다. 사형이 위헌이라고 한 이 판결은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되어 도덕적으로 수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 수정헌법 제8조의 잔인한 형벌금지에도 위반된 다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의 이 판결은「닉슨」이 임명한 네 판사가 반대하고 있어 영구적으로 계속될 것인지는 의문이나 향후 수년간 미국에서는 사형집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우리 나라에서도 사형을 위헌이라 보는 학설이 유력하며, 사형제도가 위헌이라 하여 대법원에 제소된 일도 있었다. 우리 대법원은 63년 2월 28일에 『현재 우리 나라의 헌법과 국민의 도덕적 감정 등을 고려하여 국가의 형사정책으로서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형법·군형법 등에 사형이라는 처벌의 종류를 규정하였다 하여도 이것을 헌법에 위반된 조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 합헌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이 과연 우리 헌법정신의 취지를 올바르게 해석한 것이냐는 그 뒤로도 두고두고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나아가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그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률로써 사형을 과하는 것은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신체의 본질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법률로써도 규정할 수 없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또 사형 당하는 죄수뿐만 아니라 사형집행인·사형선고 판사나 사형집행 확인검사의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위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대법원 판사들이라 하여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으며, 판결문에서도 입법론을 전개하여 『이와 같이 존귀한 생명을 잃게 하는 사형은 형벌 중에서도 가장 냉혹한 형벌임에 틀림없다』고 하고, 이의 존폐는 『국가의 발전과 도덕적 감정의 변천에 따라 입법에 있어서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문을 인용할 것도 없이 사형은 형벌 중에서도 가장 냉혹한 형벌로서 이는 마땅히 폐지되어야만 할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준 전시 하에 있기 때문에, 간첩이나 반 국가단체 구성범이나 적전 도망죄 등에 있어서 사형을 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범인들은 오히려 총살형 등을 명예로 생각하고 있으며, 종신징역형을 불명예로 생각할지 모른다. 사형제도의 존재 이유로서는 이제까지 위협의 효과가 크다고 생각되었으나 오늘날 실증적 연구에 의하여 바로 그러한 효과도 거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사형제도 폐지론은 사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원천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침해가 된다는 원리 면에서뿐만 아니라, 오판에 의하여 사형이 된 경우에는 그 구제책이 전혀 없다는 실제 면에도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사형이란 최종적인 형벌인데 특히 이의 집행이 불공평한 경우에도 중대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옛날에는 정치깡패를 사형에 처한 적이 있으나 어떤 때는 정치깡패들이 득세한 적도 있다. 종신징역형의 경우에는 사회의 변천에 따라 감형도 되고 사면도 되는데 일단 사형되고 나면 다시 구제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 대법원이 사형을 판결에 의하여 폐지한 것은 극히 타당한 일이며, 우리 대법원의 합헌 판결도 그 뒤 1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는 마땅히 재검토의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 판례의 번복이 지연되는 경우 국회는 우선 반 국가범죄의 처벌을 제외한 모든 사형을 법개정으로 폐지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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