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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집단 안보회의 현상동결 노리는 소의 「평화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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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시아 집단안보회의에 대한 소련의 태도가 최근 들면서 부쩍 적극화되었다. 프라우다, 이즈베스티야 「신시대」 등 정부와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지들이 차례로 회의소집을 촉구하는 장문의 논설을 싣고있는 것이다.
아시아 집단안보회의가 처음 거론된 것은 69년6월. 브레즈네프에 의해서였다.
브레즈네프의 제안은 구체적 내용이나 절차를 건드리지는 않았으나 이것이 66년에 제기되었던 유럽 안보회의의 아시아 판인 것만은 명백했다.
따라서 상호감군, 다수의 쌍무, 다변조약체결을 통한 현상동결(현 국경선·분계선 인정)이 소련측의 의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소련의 이러한 「평화처방」은 미·일·중공 등 이해 강대국의 계산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4강 사이에 어떤 타협안이 마련된다 해도 그것이 아시아 당사국들의 이해추구와 일치하리란 전망은 흐리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와 같은 판단은 아시아 안보회의에 대한 각국의 반응에서 충분히 반증된다. 이를테면 소련의 제안에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냈던 중공의 태도가 그렇다.
중공은 브레즈네프의 제안이 나온 직후 『반중국의 군사동맹』, 『미·소에 의한 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이라는 식으로 혹평했다.
다시 말해서 양극시대에 형성된 체제를 동결시키는 것이 미·소양국에 모두 이익이 되므로「사회제국주의자」와 미국이 반중공 연합전선을 펴고있다는 해석이다.
21일자 프라우다지는 중공 지도층이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 아시아 집단안보의 구상과 부합되는 입장을 취해 왔으며, 미·소가 합작해서 대중공 포위망을 만들 의사는 전혀 없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프라우다가 지적한 중공 지도층의 발언이란 모두 중공·소 분쟁이 있기 이전의 해묵은 것이다.
따라서 중공이 소련이나 미국의 이니셔티브 아래에 열리는 집단안보회의만은 거부할 것이라는 점은 거의 명백하다.
한편 미국과 일본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선뜻 호응하지 못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일은 각각 그보다 앞서 매듭지어야할 과제들이 많은 것이다. 월남전은 차치하고라도 닉슨 독트린에 따라 아시아에서의 개입량을 줄여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손을 빼기 전에 어떤 사실상의 「균형상태」를 보장해 놓는 것이 지상의 과제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균형은 일본의 배역 여하에 따라 그 양상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며 이점에 관해 아직도 미묘한 불확정성이 걷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8일부터 열렸던 시모따(하전)회의, 18일에 개최된 『동아시아 평화전략』에 관한 국제민간회의에서의 논조, 그리고 그와 때를 같이한 키신저 방일의 성과가 한 증거이다.
『대만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한반도의 방위문제에 대해서는 일본도 분담해야 되겠다』(10일 시무따 회의)는 것이 미국 민간학자측의 주장. 반면 키신저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아시아 방위역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학자들은 『핵개발이나 본토방위에 필요한 이상의 무장은 일본의 입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21일 평화전략회의)고 맞섰다.
그러나 연초에 방일했던 레어드 국방장관이 전술핵무기의 생산을 종용했었다는 설, 한국과 대만의 안보를 일본안보의 『긴요한 요소』로 규정한 닉슨, 사또 공동성명에 있어 대만조항은 자연 소멸된 듯이 복전 외장이 말했으나 한국조항은 엄존한다고 한 사실을 비춰보면 양측민간 베이스의 당위론과 정부 베이스의 현실 정책사이엔 현격한 거리와 양면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일본의 진로는 아데나워냐, 브란트냐를 두고 아직 명확한 태도확정이 안된 것 같다.
따라서 소련 안이든, 미국 브레진스키 교수의 6개 국회의안이든 아시아 집단안보체제의 성패와 전망은 앞으로 일본의 결단여하를 매개변수로 해서 정착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이 「비핵·경제대국」으로 일관하는 경우와 군사대국으로의 테이프를 끊는 경우 사이에는 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질서와 집단안보체제의 가능성이나 형태는 물론 보장방법에 있어서도 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제네바 군축위대표를 통해 소련 안에 대해 희미한 「고려용의」를 비쳤다가 그후 다시 우시바 주미대사의 입을 빌어 소의 집단안보회의 구상을 완곡히 거부한바 있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기본입장에 대해서 『언어상의 평화대국』과 『실질적인 군사력 증강』등 야누스의「양면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비핵원칙을 완강히 고집하면서도 4차 방위계획(72∼76년)으로 1백60억 달러를 책정했으며 경제·기술대국을 표방하면서도 군사비의 평균증가율은 세계 제1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수공업의 기계공업에 대한 비율이 이미 12%를 넘어섬으로써 석유화학공업 단계에서 대형군수공업 단계로 뛰어든 것이 아닌가 우려마저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모든 문제를 군사적 대결이라는 차원에서만 접근하던 양극시대의 유령은 아시아에서도 밀려날 차례가 되었다. 업저버들은 소련의 집단안보구상이 적어도 새로운 장에서의 『흥정의 테마로서는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균형동결이 반드시 브레즈네프가 설정한 집단안보의 궤도 위에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미·중공이 상해 코뮤니케를 통해 평화 5원칙과 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 장악 반대에 합의했고 소련과 아스팍이 동남아국가연합의 중립화 구상을 지지했으며 중공은 「실론」의 인도양중립화안을 지지했다.
또 일·소 평화조약이 연내로 약속되었고 일·중공 국교수립이 이미 일본 차기정권의 기정방침으로 보이는 이상 새시대의 새로운 균형에의 노력과 탐색은 이미 아시아 국제정치의 지평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21일자 이즈베스티야지가 한국이 추도했던 아스팍(아·태 각료이사회)의 탈군맹화 정책을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바람』이라고 환영한 것은 의미심장한 움직임이라 할 것이다. [홍사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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