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들은 불경기를 노렸다|「이발소 네다바이」의 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불경기의 바람에 휩쓸려 이발소업이 시들해지자 이를 틈타 지능적인 사기를 해온 「이발소 네다바이」꾼 들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번에 검거된 이발소 전문 사기꾼들은 대부분 시골 사람·파월 장병 가족·제대 군인·퇴직 관리 등 사회 물정에 어두운 서민층이 애써 저축한 소자본으로 생계를 이으려는 소망을 이용, 범죄를 저질렀고 범행의 대상을 한참 불황에 허덕이는 이발업소로 삼았다는 점에서 불경기 속에 싹튼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경찰에 적발된 26개 파 50명의 조직적인 이발소 「네다바이」꾼들은 대부분 대도시의 변두리에 자리잡고 적자운 영으로 폐업 직전에 있는 이발소를 헐값에 사들인 뒤 신문 광고를 이용, 성업 중인 것처럼 속여 싯가의 2∼3배를 받고 팔아 넘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발소업의 불경기는 다른 접객 및 환경 위생 업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금 인하·업체 전매 등의 양상을 빚으면서 두드러졌다.
서울 시내 도심 이발소의 경우 「호텔」 지하 이발소를 제외한 일류급 이발소는 종전에 어른 1인당 5백원 받던 이발료를 3백원으로, 3백원씩 받던 2류급 이발소는 2백원으로, 2백원씩 받던 변두리 이발소는 1백80원에서 1백50원씩 인하, 불황을 벗어나려고 허덕이는 실정이었다.
특히 대도시의 변두리 지역에서 적자 운영을 감당치 못해 처분하려고 내놓은 이발소가 늘어나면서 사기꾼들도 부쩍 늘어났다고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이들 이발소 「네다바이」꾼들은 3∼6명이 한패를 이루어 두목·물주·행동책·바람잡이 등으로 조직, 교묘한 수법으로 범행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물주가 범행 대상 이발소를 물색, 20∼30만원의 싼값으로 사들이면 두목은 2∼3개의 일간신문에 이발소 매도 광고를 낸 뒤 연락처로 잡은 여관방 등에서 매입 희망자로부터 전화 문의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매입 희망자가 나타나면 행동책들이 다방으로 유인한다. 『성업 중인데 이민을 가기 때문에 급히 판다』 또는 『교통 사고를 당해 치료비 때문에 갑자기 처분하려 한다』는 등의 속임수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지난 3월13일 충북 충주에서 가산을 정리하고 상경, 마땅한 생업을 찾고 있던 이승봉씨 (45·성북구 미아동 12)는 D일보 광고 난에서 『이·연초·공전·식품·큰방 합 75만원·일 5천원 책임짐·연락처 (92)23×7』이란 광고를 보고 이발소를 사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씨가 광고에 난 전화 번호로 문의하자 50세 가량의 남자 목소리로 『주인이 잠깐 외출했다. 연락처를 알려주면 주인이 돌아온 뒤 연락해주도록 하겠다』고 공손히 말한 뒤 이씨의 전화 번호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상오 10시쯤 이씨는 이발소 주인으로부터 돈암동 T제과점에서 만나자는 전화 연락을 받고 급히 나갔다.
제과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홍상표 (35·수배 중) 등 2명은 『하루 1만3천원씩 오르는 곳인데 미국에 유학 가는 사람이 있어 돈이 급해 처분한다』고 말하면서 당장 계약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판다고 다그쳤다.
옆에 있던 바람잡이 이모는 『이발소를 사들인 뒤 이발관에 딸린 방을 15만원 전세로 빌려주면 이발관 책임자로 5만원을 걸고 매일 3천원씩 책임지고 입금시키겠다』고 제의해 왔다.
이씨가 이발소를 구경하자고 말하자 이들은 미아 4동 72 금강 이발관으로 안내했다.
이발소에는 의자마다 손님들이 가득 차고 5∼6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바람잡이 들이라는 것을 알리 없는 이씨는 2시간 뒤 홍과 다시 만나 흥정을 벌인 끝에 70만원에 매매 계약을 맺고 돈을 건네주었다. 이들이 사라진 뒤 이씨가 이발소로 가보자 손님은 한명도 없고 종업원들은 한가롭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씨는 겨우 싯가 40만원짜리 이발관을 30만원이나 더 주고 속아 산 것이다. 하루 매상도 고작 2천여원 밖에 되지 않았다. 이발소 「네다바이」꾼 들은 이발관이 성업중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매입 희망자가 이발관을 보러갈 때면 때맞추어 부른 구두닦이·복덕방 주인 등을 무료로 머리를 깎아 주겠다면서 불러다 앉혀놓는 수법을 썼다.
이들 가운데는 요즘 부쩍 늘어난 이발소 전매 희망자들을 찾아다니며 빨리 팔리게 해 주겠다고 주인을 속여 「네다바이」를 일삼던 파들도 있었다.
검거된 김동수 (30·성동구 신당동 36) 등 3명은 「아폴로」 이발관 (주인 임제술·신당동 292)을 40만원에 팔려고 내놓았다는 것을 알고 업주인양 행세하면서 최진호씨 (40·서대문구 불광동 778)에게 80만원을 받은 뒤 주인에게 40만원을 주고 나머지를 가로챘다.
김은 몇달째 이발관을 팔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주인 임씨를 찾아가 『우리는 이발관 매매 소개 업자다. 매매가 빨리 되도록 해주겠다』고 제의, 임씨의 승락을 얻은 다음 지난해 12월4일 C일보에 광고를 냈다. 다음날 광고를 보고 찾아온 최씨에게 김은 『나는 직공 책임자다. 주인은 운수업을 겸하고 있어 매매 위임을 받았다』고 속였다. 일당들은 위생복을 입고 이발을 하는체 하기도 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양 꾸미기도 했다.
김은 최씨에게 『운수업을 하는 주인이 사고를 내어 구속됐다. 주인을 빼내기 위해 급히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믿은 최씨는 다음날 을지로 6가 B다방에서 김에게 80만원을 건네주었던 것.
이들 가운데는 싸구려 이발관을 속아 산 피해자들에게 이발사를 가장한 공범을 보내 사기당한 사실을 알리고 『손해를 크게 보지 않으려면 싼값에라도 빨리 팔아 넘겨야 한다』고 처분을 종용, 싼값에 사들인 뒤 다시 같은 수법으로 비싸게 팔아 넘긴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같은 이발관이 1년 동안 최고 5번이나 전매되기도 했다.
경찰에 검거된 이발소 「네다바이」 꾼들은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 한해동안 서울에서 만도 모두 26개 이발소를 상대로 1천9백56만여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갑자기 늘어난 「네다바이」꾼들의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 이발소를 경영하다 실패한 업주 및 전직 이발사들로 이발소 운영에 밝은 것을 이용, 영세민들을 우려 왔다고 지적하고 시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조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금창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